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야 Aug 23. 2022

외로움과 패스트푸드

 평소 잘 가지 않던 지역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주변 맛집을 검색하는 것이다. 그 지역에서 볼 일이 끝난 후 주변 맛집이나 예쁜 카페에 들렀다가 귀가하는 것이 나의 소소한 행복이다. 같은 서울이라도, 자주 가는 지역이라도 언제나 찾아보면 새로 생긴 맛집, 오래되었지만 숨겨진 맛집을 찾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외출이 더 풍부해진다.


 면접을 이틀 앞두고 ‘서울시 취업 날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정장을 대여하러 갔다. 접근성이 좋고, 대학생이 많은 번화가에 위치한 업체를 찾아가는 길에 점심을 그곳에서 해결하고 정장을 빌린 뒤 바로 도서관으로 가면 되겠다는 완벽한 계획을 머리에 그렸다. 내가 다니는 구립 도서관 근처에는 마땅한 먹거리도 없고, 매일 프랜차이즈 버거, 토스트 등으로 끼니를 때우던 차에 도서관 부근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정장 대여업체 근처에 가성비 좋고 맛도 좋다는 멕시칸 음식점을 찾았다. 맛집을 찾고 나면 리뷰를 읽어 상세한 정보를 얻는다. 리뷰에는 모두 호의적인 내용이다. 메뉴판을 보니 멕시칸 음식점에서 보편적으로 보기는 힘든 치미창가도 판다. 여기다 싶었다. 그런데 리뷰에 가게가 넓지 않아 웨이팅이 늘 있는 편이라는 글이 마음에 걸린다. 혼자 대여한 정장을 들고 사람들 틈에서 웨이팅 하고 싶지 않아 맛집을 포기하고 아쉬운 대로 타코벨로 향했다.


 프랜차이즈고, 패스트푸드인 만큼 가격도 조금 더 저렴하고, 매장도 아주 크다. 주문한 지 3분 정도 지났을까. 음식이 나왔다. 주문을 넣고 조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데우는 방식인 것 같았다. 2층으로 올라가니 이 큰 매장에 나를 포함해 두 팀이 있다. 쾌적한 분위기에서 편하게 식사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면 혼자 먹을 땐 있는 걸로 대충 때우거나, 맛과 서비스가 보장되는 내가 아는 맛인 프랜차이즈 식당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맛집에 가서 사람들로 가득 찬 매장에서 혼자 식사하는 것도 좋지만 오늘처럼 어쩐지 좀 쓸쓸한 날은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혼자 유튜브로 예능 클립을 보며 식사하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하다. 외로움이 자꾸 냉동식품, 배달 식품, 패스트푸드로 연결되고, 이로 인해 건강에도 영향을 끼치며 그 결과 더 외로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인맥암흑기’라는 말을 들었다.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 취업을 앞둔 시기에 찾아온다는 인맥이 단절되는 시기를 이르는 말이다. 친구들을 만나고는 싶은데, 딱히 근황에 대해 할 말도 없고, 내 요즘 생활 이야기를 해봤자 우울해질 뿐이다. 게다가 취업을 잘 한 친구의 생활을 들으면 자괴감이 들고 비참해진다. 취업준비를 하며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로 버는 40만 원 중 10만 원 가까운 토익 시험 접수를 하고, 한 권에 2-3만원 하는 교재를 사고, 스터디 카페에서 몇 천 원에 손을 떠는 나와 달리 오늘 밥값을 쿨하게 결제하는 대기업 다니는 친구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된다. 모임에서 사용하는 비용이 부담스러워 나가지 못하다가 멀어지기도 한다. 공무원 등 시험 준비를 하는 친구가 그룹에 여러 명 있을 경우, 누군가 먼저 합격하고 불합격한 경우 주변 친구들도 어색해지고 결국 이때를 계기로 인연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기간이 길어지고, 더 고립된다. 너무 공감되는 말이라 눈물이 날 뻔했다.


 대학시절 만들어진, 당시 20살에서 26살 대학생 11명으로 구성된 모임이 있다. 이 모임에서 정말 누구나 1-2년은 단체 대화방에서 대답도 하지 않고 모임에도 나오지 않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순차적으로 그런 시기를 겪었기에 누군가 잠수를 타도 ‘그런 시기인가 보다’ 생각하고 가끔 생일이나 명절에 기프티콘을 보내며 안부를 묻는 것이 최선의 응원이었다. 취업 후 자연스럽게 돌아온 친구도, 이제 서먹해진 친구도 있다. 취업이 힘들지 않았다면, 다들 학교 졸업 후 순탄하게 자기 길을 찾아갔다면 우린 서먹해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오늘 아침에 혼자 운동을 다녀온 뒤, 아침 겸 점심으로 킬로그램 단위로 주문해 냉동실에 얼려 둔 떡을 먹었고, 점심 겸 저녁으로 브리또를 하나 먹었다. 가방에 먹던 마시다 남은 생수가 있어 세트로 먹지 않고 저렴한 단품으로. 혼자 하는 식사에 정성과 시간을 들이면 외로움이 덜 하겠지만 그럴 시간도, 여력도 없어서 자꾸만 식사가 더 서글퍼진다. 취준생의 슬픔은 이렇게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작은, 식사 시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소서 쓰기 싫은 구직자의 넋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