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추억이다.
프리마돈나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이태리어 중 도나가 있다. 여자란 뜻인데 우리는 프리마돈나라는 단어가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최고라는 뜻의 프리마와 여자라는 뜻의 도나가 만나 탄생한 단어 프리마도온나! 돈에 강세가 들어가면 그럴듯한 이태리어로 들릴 듯하다. 음대에서 공부하던 시절 노래를 잘도 부르는 여성 성악가들을 별칭처럼 따라다니던 단어. 그런데 논나는 여자 할머니를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품에 안겨 할머니 특유의 향에 코를 킁킁거리곤 했다. 어렴풋이 남은 그 기억은 추억이 되어 나의 삶 속에 녹아 있고 부모가 되어 버린 지금은 나의 품을 파고드는 아이들의 추억 속에 각인될 나의 홀아비 냄새는 아이들의 유전자에 녹아들어 가겠지. 할머니의 살냄새처럼 할머니가 무심한 듯 내어온 찬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무언가가 있는데 이 영화는 그 느낌을 설명하기 위해 모든 장면을 추억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중년이 훌쩍 넘은 주인공은 할머니를 보낸 뒤 어머니와 살다가 어머니마저 할머니 곁으로 보내고 슬픔에 잠겨 있다. 그의 죽마고우들은 그의 모습에 측은지심을 느껴 지금까지 엄마와 할머니를 위해 살아왔던 주인공에게 이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보라 권유한다. 주인공은 한참을 고민하였겠지. 이제 이 세상에 남은 건 본인 혼자 뿐인데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었나 수없는 질문을 던졌으리라.
할머니와 어머니의 비법
주인공을 행복의 도가니에 흠뻑 취하게 만드는 엑스터시는 바로 음식이었다. 그냥 보통의 음식이 아니라 행복의 원천인 화목한 집에서 엄마와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밥상. 그 음식을 먹는 순간만큼은 주인공은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천국의 식탁에 앉아 슬픔의 그림자조차도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충만함을 느꼈으리라. 그에 더해 그에게 그 음식은 사랑하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늘 곁에 두고 추억할 수 있는 그 만의 방편이었다. 그렇게 그의 식당 프로젝트는 시작되었고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이태리 각 지역의 할머니들이 모여 만드는 추억의 음식이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추억이란 큰 선물을 맛 보일 수 있는 지역의 유명한 명소가 되었다. 그렇게 그는 음식을 통해서 잃어버린 가족들과 함께 또다시 살아갈 수 있었다.
외할머니와의 추억
어린 시절 맞벌이로 바쁘시던 부모님은 나와 형을 외갓집에 맡겨둔 적이 있었더랬다. 나와 나의 형은 또래 여사촌과 사촌형이 있는 큰 이모댁으로 보내졌다. 그날 밤 나는 무슨 무서운 꿈을 꾸게 된 건지 갑자기 일어나 이모집을 나오게 되었고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외할머니 집으로 눈물을 훔치며 걸어갔더랬다. 여름밤이라 무더위가 한창이었고 나는 열려있는 알루미늄 미닫이 대문을 열고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불렀다. 당시에 우유배달을 하시던 외할머니는 고단한 몸을 늦은 밤에서야 뉘우셨으리라. 나의 부름에 응답이 없음을 슬퍼하며 나는 마당에 있는 평상에 누워 잠이 들었나 보다. 새벽 녘이 되어서야 아침 준비를 위해 나오신 할머니는 나를 발견하시곤 깜짝 놀라셨다고 한다. 어린 녀석이 아무리 그래도 집을 나와서 할머니를 찾아온 게 기특하기도 하고 다행이라 여기셨는지 나는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실 때까지 외할머니 댁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외할머니는 나를 아끼는 손주로 기억하셨고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입원하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의 이야기와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고3 수험생이라는 핑계로 난 할머니를 뒤늦게 찾아뵈었지만 그땐 외할머니는 이미 사람을 알아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할머니 손을 잡고 할머니께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얼굴이 퉁퉁 부어 온몸 여기저기에 주삿바늘이 꽂혀 눈만 감고 계시는 생전 처음 보는 외할머니였다. 그렇게 며칠 지나지 않아 외할머니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도라지 진미채 무침
도라지를 흐르는 물에 씻고 껍질을 벗겨내면 하얀 속살이 참 곱다. 흰색은 아니고 그렇다고 노랑도 아니지만 그 빛깔은 참 고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뿌리 한 뿌리 정성껏 손질한 도라지와 진미채가 외할머니의 손맛과 합쳐지면 달달하고 시큼한 진미채 무침이 탄생한다. 내가 외할머니를 기억하는 유일한 음식이 바로 도라지 진미채였다. 눈물을 머금고 울다 외할머니에 의해 발견된 어린 외손자는 그날 아침상에 올라온 음식을 기억한다. 손주를 향한 사랑이 가득 담긴 외할머니의 음식은 나에게 이토록 강렬한 추억이자 사랑이자 그리움이었다. 7살도 채 되지 않던 소년의 기억에 각인되어 이제 반백을 바라보는 중년의 기억 창고 속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그 음식. 그런 연유인지 영화 논나를 보는 내내 가슴이 벅차올랐고 대단한 영화는 아닐지라도 나로 하여금 바쁜 일상에서 잊고 지냈던 많은 추억들을 꺼내어보는 소중한 시간과 경험을 준 따뜻한 영화였다. 그리운 할머니의 품과 그 향을 머금은 온기 있는 그들의 음식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함으로 채워짐을 느낀다. 머나먼 유럽 땅에서 생전 처음으로 한식 요리사가 되어 금발머리 외국인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추억과 경험을 선물할 수 있을까? 이 음식에 그러한 마음을 담을 수 있도록 조금은 더 이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볼까? 매일매일이 전쟁처럼 치열하지만 그 속에서 이런 작은 결심을 더한다면 총칼이 난무하는 전쟁터에 피어나는 작고 아름다운 들꽃으로 피어나려나? 독일에 입국한 지 어느새 2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에서야 영화 논나를 통해 다시금 글을 쓰는 재미를 찾게 되는 어느 늦은 봄날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생존을 이 글에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