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서 (본인은 마시지도 않는) 소맥 전문가 행세를 하고..
2024.11.23. (토)
유산소를 너무 오래 안 한 것 같아 토요일 아침 줌바 수업에 다녀왔다. 운동하는 김에 제대로 해보자고 수업이 열리는 곳까지 걸어갔는데, 차로 10분 걸리는 거리를 꽤 열심히 걸었는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길에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와서 2발자국 1후회 했다. 그렇게 도착한 몰에는 크리스마스 마켓 준비가 한참이었다. 아직도 이 축축하지만 춥진 않은 이 날씨 속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적응이 덜 되었는데 따뜻한 빛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마켓이라니. 그리고 그 앞에서 시작된 줌바 수업. 선생님도 크리스마스 마켓에 신나셨는지 시멘 바닥에 엎드려서 트월킹하는 자세까지 가버리셨다.
수업이 끝나고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며 구경을 하다 어떤 언니가 초코렛으로 덮여있는 쿠키 시식을 건네줬다. 평소 같으면 오 맛있네요~하고 갈 텐데 공복에 아침 운동을 너무 열심히 했더니 달달함이 100배로 느껴졌다. 정신 차려보니 얼만지도 안 물어보고 카드를 내밀고 있었다. 뒤늦게 찍힌 내역을 보니 이거 조그마한 쿠키 하나에 만원이요..? 그래 어차피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만 원인데 그건 배도 안불러..! 정신승리하고 쿠키가 생겼으니 스타벅스가서 커피 마심(?). 먹고 마시며 한창 할 일(밀린 일기 쓰기)을 하다가 저녁 약속을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걸어갔으니 걸어 돌아왔는데 오는 길에 풀을 뜯어먹고 있는 소들을 만났다. 그 옆을 지나가는 구매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차 머리 위에 얹고 집으로 돌아오던 사람들.
돌아오는 길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빠르게 씻고 외출 준비를 마친 뒤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버스가 안 왔다. 반대편 버스는 다섯 대 즈음 지나갔는데도 다시 이쪽으로는 한 대도 돌아오지 않는 버스를 30분도 넘게 기다렸다. 어둠과 빗속에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전우들도 각자 우버를 불러 하나 둘 떠나고 나도 약속 시간이 임박해서 결국 우버를 타고 센트럴로 향했다. 오늘은 지난주 K페스티벌에서 함께 근무했던 봉사자들과 저녁 회식이 있는 날이다.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bbq에서 회식을 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혼자 한국인에 다들 영어를 하는 친구들이 아니라서 눈 굴리면서 열심히 대화를 따라갔다. (로제 떡볶이에 치킨 열심히 주워 먹으면서)
다들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봉사에 지원한 친구들이라 나보다도 한국 문화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았다. 특히 나에게 이 술이 나은지 저 술이 나은지와 같은 질문들을 했는데 답해줄 수 없었다. 눈 감고 먹으면 다 비슷할거야 아마. 그러다 한 친구가 소맥을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다들 나를 쳐다보길래 거의 5년 만에 소맥을 말아보았다.
2차를 가게 되었다. 그냥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친구가 있길래 같이 가면 되겠다! 했던 건데 그래! 그럼 함께 놀다 가자!가 되었다. 그래서 다 같이 la cali라는 동네로 이동했다. 말로만 듣다 이 시간대에는 처음 와봤는데 클럽도 술집도 마리화나향도 가득한 곳이었다. 그 와중에 외국인 한 명(나) 알뜰살뜰 챙겨주면서 다들 계속 하나! 둘! 셋! 하면서 이동할 때마다 총 인원 체크해주는 것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처음 들어간 바에서 chiliguaro라고 토마토 술에 칠리를 넣었다는 작은 샷을 마시게 되었다. 소주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거 진짜 왜 마시는 건데..? 이게 나름 또 베리에이션이 있어서 옆 친구는 망고가 들어간 chiliguaro를 마시길래 갈아타려고 했지만 내가 생각한 그 달달이 망고가 아니라 mango con chili의 mango verde 였다.
그렇게 여기 저기 간만 보던 중에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늘어 마지막엔 10명이 넘어가서 결국 다들 편의점에서 뭐 하나씩 사들고 공원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놀던 중에 공원에서 사는 홈리스들이 몇 번 말을 걸었는데 여기서도 작은 문화 차이를 느꼈다. 한국에서 친구들이랑 한강이나 공원에서 노는데 노숙자들이 말을 건다? 먼산을 바라보거나 도망가지 않았을까. 여기선 노숙자들이 말을 걸면 곧잘 대답하고 친구 마냥 대화를 이어나간다(!) 상인들도 본인 가게 근처에서 자면 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가끔 들어와서 가까운 사이처럼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다들 어우러져서 지내는 것 같다.
그렇게 코스타리카에 오고 처음으로 새벽까지 밖에서 놀다 추워서 우버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들 한국을 너무 좋아해 줘서 고마우면서도 약간 헉하는 순간들(예를 들면 돌아가면서 한 명씩 사진 찍어달라고 할 때)도 있었는데 좋은 친구들은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