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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4. 까르따고 양로원 봉사활동

크리스마스 선물 전달식

by 에스더

2024.12.05. (목)


오늘은 사상 최초 스페인어 수업을 빼먹은 날! 봉사활동을 위해 산호세를 벗어나 옆동네 까르따고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국립극장 앞에서 회사 버스를 타야 하는데 또 어떻게 생긴 버스가 어디로 올지 몰라 걱정돼서 미리 봉사활동 주관 담당자한테 연락을 했더니 집 근처에 사는 회사 동료에게 픽업을 부탁해 줬다. 역시 다들 친절하다. 그렇게 같은 동네 동료와 우버를 타고 국립극장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동료였지만 나에게 우버 드라이버를 소개해주고 오는 길 내내 별 이야기를 다 하길래 최소 친구인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자기도 오늘 처음 본 그저 우버 드라이버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스페인어 수업 과제 중에 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길 물어보기 과제를 가장 싫어하는데 선생님이 중남미에서는 원래 다 그렇게 대화한다고 하시더니 너를 보니 정말이구나! 했다. 그랬더니 본인은 너무 사람을 좋아하고 더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어렸을 땐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대화하곤 했다고 한다. 샤이해 지려고 노력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역시 예정된 시간에서 30분 정도 뒤늦게 버스가 도착했다. 미리 연락 안 했으면 또 요 한국인 혼자 10분 정도 기다리다가 연락도 없이 30분이나 버스가 늦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혼자 집에 돌아갔을 것이 분명하다. 까르따고로 향하는 길에 갑자기 우리 동네로 돌아가더니 우리 집 근처에서 멈춰 대학 합창단과 악기들을 싣고 다시 출발했다. 아니 그럼 저도 한 시간 늦게 일어나서 우버 안 타고 집 앞에서 버스 탈 수 있던 거잖아요..


그렇게 도착해서는 먼저 한쪽에 선물들을 깔기 시작했다. 사실 정확한 전후 사정은 모른 채로 그저 까르따고 봉사활동 간다니까 손들고 온 건데, 알고 보니 양로원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두에게 위시리스트를 받은 뒤 매칭해서 은행 임직원들이 한 명씩 준비해 준 선물을 우리가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휠체어를 밀고 행사장으로 모시는데, 오실 의사가 있는지를 여쭤봐야 했다. 그냥 스페인어도 어렵지만 거의 이가 없으셔서 더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내가 여쭤본 분은 전부 행사장으로 모셔버렸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두 모인 뒤에는 대학 합창단corro이 마림바와 여러 악기들을 연주하며 캐럴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떻게 은행과 대학이 협력해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옆 친구가 합창단 지휘자랑 은행 담당자랑 만나는 사이라고 알려줬다. 코스타리카도 퀴어프렌들리..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애초에 프렌들리하고 말고가 없이 서로 다른 취향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면서 선물을 전달해 주고 개봉을 도와드렸다. 따뜻한 모자나 옷 종류, 그리고 향수도 많았다. 여기 사람들은 향수를 엄청 많이 뿌리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여전히 향수를 사랑하시나 보다.


끝나고서도 한참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춤을 추다가 전부 숙소동으로 모셔다 드리고 우리도 버스를 타고 산호세로 돌아왔다.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너무 피곤해서 아주 길게 잠들어버렸다. 중간에 잠깐 깨서 아침에 녹화해 주신 스페인어 수업을 캐치업했다. 그리고 내일 또 은행에서 저녁에 송년회 행사가 있는데 100% 스페인어 무더기+아는 사람 부재+친구 집 가면 맘 편히 영어 쓰면서 재밌는 파티할 수 있음 이슈로 갈까 말까 고민이 많았는데 오늘도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와서 내일 행사에도 가기로 했다.


집에 오는 길에 이전 회사를 통해 후원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학생이 대학에 갈 때까지 함께 적금을 드는 형태의 후원이라 퇴사 전에 앞으로 남은 기간의 금액을 일시불로 후원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매칭시켜줬어야 했다. 퇴사 직후 출국 하면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정확히 정리를 못하고 왔는데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올해 초에 직접 만나기까지 했는데 오늘 봉사활동을 다녀오니 갑자기 더 마음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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