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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2. 연말 크리스마스 오찬

그린치가 나눠준 크리스마스 양말

by 에스더

2024.12.13. (금)


분명 엊그제도 비슷한 크리스마스 오찬이라고 모였던 것 같은데, 지난 번은 랩실이었고 이번엔 교수님들끼리 하는 거라고 또 자리가 만들어졌다. 요즘엔 집 건물에서도 인터넷이 잘 되어서 집에서 스페인어 수업을 듣다 보니 오늘 대학 사무실에 점심 이벤트는 있는지도 몰랐는데 아침에 누군가 오늘 오찬에 오는지 물어봐줘서 놓치지 않고 다녀올 수 있었다.


그제 행사 땐 역시 코스타리카 타임으로 공지된 시간에서 한 시간도 더 지나서 행사를 시작해서 오늘은 나도 덜 기다리겠다고 15분 정도 늦은 시간에 도착했더니 오늘은 또 다들 이미 식사를 하고 계셨다. 도대체 어디 템포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가! 아마 오늘은 다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다 점심시간에 모인 거라 정시에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점심으로 pastel de carne와 샐러드를 먹고 누군가 만들어온 코코넛 롤케이크를 디저트로 먹었다. 한국에선 코코넛 가루 절대 안 먹어! 했는데 여기 와선 참 여러 코코넛 디저트고 뭐고 뭐든 잘 먹고 다닌다.


이어서 시크릿 산타 공개 순서가 있었다. 나는 시크릿 산타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아서 조금은 뻘쭘하게 눈을 굴리며 교수님들 한 분 한 분 시크릿 산타가 밝혀질 때마다 와! 와! 리액션만 열심히 했다. 누가 본인의 상대였는지 밝히기 전에 그 사람을 연상할 수 있는 캐릭터를 먼저 보여주고 다 같이 맞춰보는 시간이 있는데 한 분이 뮬란을 꺼내 들어서 다들 에스더..? 했다. 인종으로 그러기 있습니까? 그렇지만 나도 순간 저요..? 했다.


시크릿 산타 선물 교환식이 끝난 뒤에는 그제 행사 때 했던 빵 굽는 장갑을 끼고 겹겹이 포장되어 있는 선물을 뜯는 게임을 또 했다. 그제 학생들끼리 할 땐 원카드, 젠가 같은 선물이 나왔는데 교수님들끼리 할 땐 현금이 나왔다. 그래서인지 다들 흥분해서 정말 진심으로 게임에 임했다. 마지막에 누군가 조금 시간이 지났는데 알람 소리를 못 듣고 뜯다가 선물을 받아버렸다. 나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교수님 한 분이 계속 본인이 봤다면서 ¡Yo lo vi! ¡Yo lo vi! 계속 외치셨다. 나는 항상 그 'lo'를 쓰는 objeto directo와 pretérito indefinido 시제가 헷갈렸는데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저 한 문장 덕분에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덕분에 현금도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폭풍의 게임 시간 후 리셉션 데스크에서 일하는 분이 그린치 코스튬을 입고 각자 이름이 적힌 크리스마스 양말 안에 든 선물을 나눠줬다. 나는 오늘 아침에야 행사가 있다는 걸 알아서 겨우 왔는데 그 사이 내 것까지 챙겨주고 아주 따뜻한 사무실, 따뜻한 연말이다. 그렇지만 도대체 우리 프로젝트는 언제 하려고 맨날 크리스마스 오찬 행사만 하는 것인가! 점심시간 뒤에는 각자 자리로 돌아가 일을 시작했는데 사실상 아직 일이 없는 나는 뻘쭘하게 이제 집에 가볼게! 하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참지 못하고 또 queso crema를 하나 사 와서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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