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스페인어로 숫자 읽기 스킬 획득
2024.08.26. (월)
월요일이다! 은행이 문을 여는 월요일이다! 월요일이 이렇게 기다려진 적이 있던가. 오전에 미팅이 있진 않았지만 출근길에 은행을 지나치며 동향을 살핀 뒤 사무실 한 번 찍어주고 가방을 챙겨 은행으로 돌아왔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지난번 은행 계좌를 열어보겠다고 왔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아니 지난번에는 들어가서 앉아있게는 해줬는데 대기 자리조차 만석인지 앞에서 줄을 서야 했다. 사실 혼자 예상하기로는 카드를 찾으러 왔어요!->은행 경비 아저씨가 꺼내주고 거주증이랑 카드 이름 비교하고 넘겨줌. 정도의 시나리오였다. 그래서 어제부터 준비해 온 '토요일에 ATM에 카드를 넣었는데 돌려받지 못했어요(Inserte mi tarjeta en el cajero automático el sábado y no pude recuperar mi tarjeta.)'를 캡처해서 올라! 인사하고 크게 확대해서 보여드렸더니 그저 줄을 서라 하셨다.
처음에는 기다려야 하나 보다! 하고 서있었는데 이게 삼십 분 정도 지나니까 혹시 내가 이 은행 카드를 못 받아서 재발급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줄을 세우는 건 아니겠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경비원분들의 강경한 태도나 말투에 가만히 줄 서있었더니 또 지난주 계좌를 열려고 앉아 기다렸던 그 자리에 들여보내줬다. 아 여기 앉아있는 것 자체가 1차 관문을 통과를 한 거였구나. 지난번엔 한 시간 반이었는데 오늘은 얼마나 걸릴까.
그래도 지난번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앉아 기다리며 앞의 번호판만 믿지 않고 대기번호로 받은 '91을 스페인어로 읽는 방법을 계속 공부했다. 덕분에 앉아서 대기하는 동안 숫자 읽기 능력을 획득했다. 지난번 계좌를 여는 섹션은 다른 부서였는지 이쪽은 비교적 빠르게 한 명씩 대응해 나갔다. 한 2주 지내면서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이렇구나!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역시 어딜 가나 예외는 있었다. 나보다 훨씬 뒷번호를 들고 내 바로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는 5분마다 한숨을 쉬면서 스페인어로 불만을 표했다. 아저씨도 내가 지난번에 의문을 가졌던 끊임없이 들어오는 노약자석 사람들 먼저 다 봐주고 나면 우린 도대체 언제 업무를 볼 수 있는 건지 궁금했던 것 같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아저씨는 결국 은행 밖으로 나가버렸다. 거의 동시에 드디어 91(noventa y uno)! 외치는 소리를 듣고 직원을 만나볼 수 있었다. 와 이번에도 번호판만 보고 있었으면 또 순서를 놓칠 뻔했다.
Perdón, sólo Inglés.. 하고 또 무작정 카드가..로 시작하는 번역 내용을 눈앞에 들이밀고 거주증을 함께 드렸더니 그 길로 사라지셨다가 어디선가 반짝반짝 내 카드를 들고 나타나셨다! 끝? 했더니 끝! 하시길래 아주 큰 목소리로 ¡Muchas gracias! 외치고 나왔다. 스페인어가 물음표와 느낌표를 앞 뒤로 쓰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앞-뒤 느낌표 두 개 모두 포함해서 크게 외쳤다.
자리로 돌아와서는 역시나 예정된 마파두부를 먹어주고 오후엔 내일분까지의 온보딩 세션들을 마치고 퇴근했다. 카드를 찾은 기념으로 또 월마트에서 거하게 장을 봐줬는데 1) 사실 남은 현금을 쓴 거라 카드를 찾은 거랑 상관도 없고 2) 사실 거해봤자 귤이랑 사과랑 빵 하나 사봤다.. 그래도 갑자기 부유해진 마음! 와중에 브런치에서도 작가 통과 메일을 받아서 한층 더 부유해진 마음으로 귤 하나 까먹으며 작가 신청 시 제출했던 글들을 정리해 첫 발행을 준비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