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기념하기
2024.09.13. (금)
8월 13일 자정 코국 땅을 밟고 딱 한 달이 지나 9월 13일이 되었다. 뭐 했다고 벌써 한 달? 싶다가도 그사이 쌓인 서른한 개의 글을 읽어보면 뭐 했다고 라는 말은 안 나온다. 좌충우돌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이번주 내내 어떻게 하면 멋지게 기념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우연히 오늘 점심 저녁 모두 약속이 생겼다. 왠지 모르게 신나는 발걸음으로 연구소에 도착했는데 모두 다가오는 독립기념일로 신나 보였다. 빨간색 파란색 흰색 옷들을 챙겨 입고 다 같이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나도 껴줘! 하려다 오늘도 스페인어 과제를 마무리해야 해서 그냥 자리에 앉았는데 담당 교수님이 자리로 과일과 주스를 가져다주셨다. 안 그래도 아침을 못 먹고 왔는데 Gracias! 하고 먹었다가 혈당스파이크 팍 치고(초콜릿+과일+주스) 갑자기 5분 잠들어버렸다.
정신 차리고 수업에 접속했다. 오늘은 뭔가 휴가 같던 대체 선생님과의 이틀 수업을 마치고 기존 프로페소라로 돌아오는 날이다. 긴장한 채로 수업을 시작했는데 선생님 인터넷 접속 상황이 좋지 않아 월요일에 두 번 연달아 수업을 하기로 하고 오늘 수업은 취소되었다. 약간 허탈한 마음으로 뜬 시간 사이에 수수료 절감을 위한 미국 은행 계좌를 신청했다. 오늘 첫 월급을 받았는데 은행과 은행이 또 또 또 40달러를 와구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다음 페이롤 사이클이 돌기 전에 꼭 계좌 업데이트를 하겠다 다짐하고 학교 앞으로 픽업 와주신 분의 차를 타고 멀지 않은 곳의 카페로 향했다.
약속 장소를 미리 듣고 사실 메뉴 공부와 고민을 해왔는데(왜냐면 내가 메뉴 선택을 심하게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분이 샐러드-샌드위치 해서 반반 나누어먹자고 하셔서 의미가 없어졌다(그렇지만 저도 좋아해요 반반 해먹는거!). 지난주 카페에서 frío라고 안 붙였다가 따뜻한 걸 받아서 다른 분에게 피해를 드렸기 때문에 커피를 주문하면서 frío! frío! 하고 외쳤다. 원래 같았으면 이 정도까진 안 먹었을 텐데 요즘 먹을 것만 있으면 먹어두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다른 분의 샐러드까지도 다 먹어버리고는 레몬 타르트와 초콜릿 케이크를 받아 또 와구 먹어버렸다. (마음속으로 혼자 촛불을 불었다 후~ 한 달 고생했어 축하해!) 집까지 또 데려다주셔서 침대와 바로 만났는데 이 상태로 몇 시간 뒤에 또 저녁을 먹으러 가야 한다니 걱정이 되어 소화제 한 알을 먹고 잠깐 잠들었다.
퇴근 시간을 지나 7시 즈음 우리 집 앞으로 친구가 픽업을 와주었다. 이렇게 매일 픽업당하고 데려다줌 당하다니.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차는 몰라도 꼭 운전을 해서 모두를 어디든지 데려다주어야지. 친구와 함께 근처 몰로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또 시작된 설명들..! 몰을 한 바퀴 돌면서 어디 어디를 전부 설명해 주고 또 어렵게 골라서 들어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내가 빨리 스페인어 배워서 이런 시간이 줄어들게끔 하는 수밖에 없다. 어렵게 버섯 소스와 함께 나오는 스테이크 하나와 피자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각각 제로코크와 수박 주스를 마셨다. 밥을 먹으면서 오랜 시간 앉아서 코스타리카에 대한 이야기도(코스타리카에서는 결혼해도 남편 성을 따라가지 않고 아내도 성을 유지하고 아이들에게 아빠, 엄마 성을 다 준다고 한다. 결국 내려받는 건 아빠 쪽 성이지만 서류상은 성이 두 개라고 한다.), 또 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새롭게 많이 알게 되었다.
얼마가 나온 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무조건 내가 계산해야 한다! 해서 네가 지금까지 해준 일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옆에서 친구가 도와주는 것을 보고 한국분이 자꾸 뭐라도 사줘야겠네~하는 걸 듣고 절대 갚아야 할 무언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서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냥 내가 첫 월급 받아서 사고 싶어! 해서 결제했는데 너무너무 마음 안 좋아해서 괜히 계산했나? 싶을 정도였다. 나중에 영수증을 확인했는데 역시 비싼 물가에 한 번 더 놀라고 와중에 팁 문화까지 있는지 처음 알았다. 뭐가 되었든 포장해 온 남은 피자를 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잠들기 전 소화제를 한 알 더 먹어야 했지만 기대 이상으로 풍성하고 행복한 한 달 기념일이었다. 10월 이맘때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기대된다. 너..지금의 나보다는 스페인어 잘하는거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