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38. ㅂㅏㅋ벌ㄹㅔ

Concurso de Arte에 대하여 쓰고 싶었는데

by 에스더

2024.09.20. (금)


아..... 어젯밤 ㅂㅋㅂㄹ 소동 이전으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전날 사전 테스트 때 약간 놀라 깬 것 때문에 잠을 깊이 자지 못한 것 같아 피곤해서 저녁 먹은 뒤 일찍 누워 커튼을 치고 불을 껐다. 그리고 뒹굴뒹굴 핸드폰을 하다 앰플만 바르고 누웠더니 얼굴이 좀 당기는 것 같아 로션을 바르려고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가 방 한가운데 그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조용히 플래시를 끄고 그대로 그냥 기절. 개미 있으면 ㅂㅋ없는 거라며(개미 퇴치 작전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 친구 때문에 없어진 거였나 그렇다면 개미가 그리워질 정도다).. 들어올 틈도 없는데 어떻게 들어왔지? 설마 방에 백만 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 튀어나온 건가? 눈물이 찔끔 났다.


엄마!! 하고 싶었지만 엄마 오는데 24시간 걸린다. 대신 10초 거리에 있는 아래층 친구가 생각났다. 아래층 부엌에 예전에 ㅂㅋ가 나왔는데 그 친구가 잡아줬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당장 나 방에 불 끄고 누워있는데 그 친구가 바닥에 있는 것 같아 너무 무서워.. 보냈더니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다. 나 진짜 너무 필요해 그 도움. 머리를 짚고 한참 누워있다가 큰 용기 내서 바닥을 다시 비춰봤더니 도망가고 없었다. 그 사이 불을 켜고 친구가 들어올 수 있게 잠금장치를 열고(지금 막아야 할 건 저 밖에 있지 않다) 걸레대로 물건들을 치며 나와라.. 나와라.. 하던 중 무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빗자루를 들고 올라왔다. 장롱 뒤로 숨은 친구를 찾기 위해 그렇게 땀 흘려 가구까지 옮겨가며 때리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ㅂㅋ..


너무 미안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멀찍이 침대 위에서 잠옷만 뜯고 있었는데 더 이상 나도 앉아만 있을 수 없었다. 아무리 돌아봐도 보이지 않아 혹시 장롱 안에 들어갔나 싶어 큰 용기 내서 서랍장을 모두 꺼내보았지만 결국 보이지 않았다. 아니 친구 있을 때 제발 나와줘. ㅂㅋ를 마주한 것도 무섭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것도 그만큼 무서운 것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렇지만 자꾸 눈을 질끔 감아 끝까지 어디로 갔는지 쳐다보지 못해서 놓칠 수밖에 없는 그런.. 그렇게 한참 찾다가 오밤중에 땀흘리며 빗자루 들고 있는 친구에게 미안해서 몇 대 맞았으니 죽었겠지.. 고마워.. 하고 친구를 보내고 엄마아빠에게 전화해서 엉엉하며 살펴보다가 그의 뒷다리를 보았다. 그리고 바로 끊고 친구에게 다시 전화..


다시 한번 빗자루 들고 올라와준 친구. 이번엔 바구니에 아래 있는 걸 알아서 이렇게 저렇게 바구니 안으로 들어가게 해서 바구니 밀고 나와 밖에서 결국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은 벌레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친구가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빗자루 들고 올라와준 거지..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와라~하고 찾아준 거지..! 절로 사랑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내가 너 없이 뭘 할 수 있겠어 엉엉했더니 그래서 내가 있잖아~하는 스윗걸 뒤로 엄마 아빠에게 엉엉 전화를 한 시간이나 하다가 아빠의 면접 꿀팁 전수로 마무리된 전화.


사실 오늘은 아침 7시부터 저녁 5시까지 건물 정전이었다. 아침에 건물 문 열고 나가면서 고마워! 하고 문을 잡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서 왜 본인 키로 직접 안 열고 들어오는 거지 수상하다 했는데 알고 보니 전기가 나가서 안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밖에서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예 정전이 끝날 때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나와서 스페인어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예전부터 한 번 제출해 봐야지 했던 미술 콘테스트(Concurso de Arte)가 오늘 3시까지라 2시간 정도를 남기고 50% 이상 남은 그림을 아무렇게나 그려버렸다. 막상 그리고 나니 주제였던 자유롭게 표현하기!(Exprésate)의 메시지가 전혀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제출에 의의를 둔다!


마지막 순간에 제출하고 나니 벌써 3시였다. 정전이 끝나는 시간까지 도서관에 앉아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비가 내렸다. 처음 왔을 땐 이게 우기? 했는데 요즘엔 이게 우기~의 느낌으로 오후에 꼭 한 번 비가 세차게 내린다. 오전에 하늘이 너무 맑고 기분이 좋으면 오후에 비가 세차게 온다는 뜻이다.


정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푸딩을 먹고-망고스틴까지 먹어주고 누워서 뒹굴거리다 ㅂㅋ만난 그 이야기. 억울하다 그 사이에 또 깨끗하게 한바탕 청소를 했는데. 친구가 잡으면서 계속 she she 거리길래 그 와중에 성별까지 붙여서 지칭하다니 혹시 ㅂㅋ 여성 명사..? 해서 찾아보니 정말 그랬다! 아무튼 너 내가 밥을 해주든 사주든 딱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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