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로 꾸덕한 브라우니 크롸쌍과 얼음 가득한 아아를 주문하다니
2024.10.21. (월)
어제 디지털 디톡스에 지쳐 그냥 눈 감아버린 덕에 일찍 일어났다. 아침 메뉴를 고민하다 지난주 금요일에 혼자 시험 끝난 걸 기념하겠다고 요리하고 남은 닭고기가 생각났다. 요즘 오일을 충분히 발라도 요리만 하면 자꾸 팬에 까맣게 눌어붙어서 뭘 하기가 싫었는데 어제 찾아보니까(이것도 평소엔 검색해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인터넷 끊기니까 이걸 알아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카페 가서 인터넷 연결 되자마자 바로 찾아봤다.) 팬 코팅이 벗겨졌거나 오일이 충분히 가열되기 전에 팬에 음식을 올리면 그럴 수 있다길래 오늘은 식용유를 미리 충분히 따땃하게 해 주고+세지 않은 불로 시간을 들여 닭을 한참 익혀주니 훨씬 나았다! 그럼에도 소스를 바르자마자 까맣게 바닥에 붙어버려서 근시일 내에 제육볶음에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양념 있는 건 그냥 생각하지도 말기로.
여전히 작동하지 않는 와이파이는 빠르게 외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는 동기가 되었다. 연구소에 도착해서 곧 있을 프레젠테이션을 연습했다. 사실 연습보다는 팀즈로 프로페소라에게 화면 공유를 할 때 티 나지 않게 대본을 힐끗거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오랄 시험은 총 3파트로 진행되었는데 1파트는 주말 간 준비해 온 발표 2파트는 선생님과 질문과 대답 주고받기 3파트는 서프라이즈!라고 했다. 그래서 발표를 마치고 2파트를 기다렸는데 알고 보니 발표 후 Q&A가 2파트였고 이어서 마지막 파트로 간단한 롤플레이를 했다. 뭐 크게 준비하지도 않았으면서 이것도 나름 시험이라고 부담이었는지 수업 전에는 끝나자마자 집(=침대)으로 뛰어가서 커튼치고 누워버리고 싶었는데 마지막 파트가 끝나자마자 몸에 기운이 돌았다.
그래서 갑자기 열혈 학생 모드로 이어지는 수업까지 마치고 카페테리아에 와서 점심 도시락으로 싸 온 잡채밥을 먹었다. 잡채밥(인척 하지만 사실 밥알은 원래 잘 안 먹기 때문에 그냥 잡채)을 먹으면서 인스타에서 봤던 영상이 떠올랐다.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아이의 어머니가 잡채로 점심 도시락을 싸왔는데 부끄러워서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열지 못했다가 나중에 친구들이랑 잘 나눠먹은 이야기인데 잡채가 그럴 일인가? 잡채만 주워 먹다 보니 약간 뭘 좀 더 먹고 싶어서 주말에 친구가 추천해 준 세 개의 카페 중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군데에 가기로 했다.
처음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 후보 중에 한 카페의 위층 공간을 활용해서 집을 만들어놓은 곳이 있었는데 오늘 와보니 그 카페가 바로 이 카페였다. 당시 집을 보러 가서 거의 계약 일자까지 정해서, 이 집에 살면 자주 이 카페에 와서 브런치라도 먹게 되려나 싶었는데 거의 두 달이 지나 오늘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오기 전부터 친구가 인스타 페이지에서 강력 추천해 준 브라우니 크로와상을 주문하고 여전히 메뉴에 없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요청했다. 얼음을 가득 넣어주세요! 에 와이파이 비밀번호까지 얻어 시원한 커피에 꾸덕한 브라우니가 가득한 크로와상을 먹고 있다 보니 두 달 전 이 앞에서 바들바들하던 모습도 떠올랐다. 아주 기초적이지만 나름 스페인어로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이렇게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 하루하루 그냥 운동만 하며 매일이 지나간 것 같아도 전에 못하던 무언가를 새롭게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싶었다.
갑자기 저녁 약속이 생겨서 매주 월요일에 가던 춤 수업은 포기하고 그전 시간대의 필라테스 수업을 들었다. 한 시간 열심히 했지만 필라테스는 항상 뭔가 운동했다! 의 느낌이 부족해서 약속 장소까지 빠르게 걸어가기로 했다. 스페인어 수업에서 우리 동네 시설들을 찍어오기 과제가 있어서 길을 지나오며 네일샵, 쇼핑몰 등 사진을 찍으면서 이제 익숙한 동네인데도 여기 꽃집이 있었네! 여기 미용실이 있었네? 하며 새로운 발견들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경찰 검문 받음. 달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