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사피엔스(Metaverse sapiens)? 일단 책 제목에 혹했다. 신인류에 대한 이야기라도 쓰여 있는 건가? 했는데 그 아래에는 부제처럼 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또 하나의 현실, 두 개의 삶, 디지털 대항해시대의 인류’.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대항해시대’라니 뭐지? 혹시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불안과 의문을 풀어주려나?
COVID-19가 한창일 때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어떤 정치인들이 ‘메타버스를 탄다.’라는 표현을 쓰길래 버스(Bus)인줄 알았었다. 그렇다. 이 책 '메타버스 사피엔스'의 저자에 따르면 나는 X세대로 아날로그 현실이 더 익숙한 사람이다.
COVID-19가 창궐했을 당시, 그 전에 이미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시대를 살았었기에 이번에도 반년에서 길어야 1년만 참으면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백신도 나오고 치료약도 나왔지만 이전과 같은 평온한 생활은 없었다. 달라진 생활 방식에 익숙해지기 위해 고전해야 했다.
처음 ZOOM으로 수업을 하며 당혹했다. 당시까지 디지털 세계와 그다지 친하지 못했던지라 개인적으로 서툰 것도 있었지만 환경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인터넷은 끊기고 오작동은 당연한 것처럼 빈번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러한 문제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학생들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ZOOM 수업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얼굴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각종 필터에 아바타(Avatar) 기능까지 더해졌다.
이 2년 동안 삶의 방식이 대부분 달라졌다. 저자는 그 이유를 앞으로 10년, 길게는 30년 보다 먼 미래에 일어났어야 할 일들이 이 2, 3년만에 벌어지는 ‘초가속의 시대’에 진입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초가속 시대는 갑자기 나타나지 않고 그 이전에 있던 것들이 급속히,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라 했다.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반년 후, 이 사태는 길어질 것이며 앞으로의 생활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그 흔한 게임도 한번 안 해본 내가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을 공부했고 그것들을 만들고 구동시키는 Unity라는 툴의 자격증도 따냈다. 반백에 가까운 나이에 어렵게 자격증을 땄고 메타버스 플랫폼인 로블록스, 제페토, 게더타운 등을 만드는 법까지 섭렵했지만 헛헛함과 더불어 불안감만 커져갈 뿐이었다. 메타버스는 결국 학교 교육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가상세계일 뿐이고, 학생들의 도피처가 되어 현실과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 도리어 역효과만 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저자의 질문이다. ‘도대체 현실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할까? 탈현실화된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현실은 모두에게 동일한가?라는 단락을 읽으며 잊고 있었던 사실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은 세상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우리 뇌의 해석을 거친 결과물이다. 한 가지 사실에도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수만큼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나의 현실은 나의 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개인의 삶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타버스를 즐기는 것은 단순한 현실도피일까? COVID-19로 인해 사람들은 현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직접 만나거나 소통할 수가 없었고 그 고독을 견디다 못해 대안으로 만들어진 것이 메타버스인데 그 발전 양상을 보면 고독의 크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그렇다. 메타버스의 시작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탈고독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불안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제6장을 읽으며 내 불안의 원인을 알았다. 내가 불안한 것은 메타버스 자체가 아니라 그 도구가 되는 인터넷과 인터넷의 발전 과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 때문이었다.교육자의 입장이다 보니 정보와 양질의 교육이 대중화되면 사회가 투명해지고 더욱 발전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은 15세기 인쇄술의 발명과 발전의 역사에서도 드러나는데 인쇄술로 인해 지식과 진실의 전파를 기대했으나 오히려 허위 정보를 만들어 뿌리는 것에 더 치중되어 유럽 역사상 가장 잔인하다고 알려진 각종 종교전쟁들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현재 현실도 그런 듯하다. 인터넷을 통해 각종 네트워크와 커뮤니티, 유튜브 등에서는 정보가 넘쳐나는 만큼 허위 정보도 쏟아져 나왔고 사람들의 양분화가 심해졌다. 뇌 과학자인 저자는 양분화 현상을 제3장에서 설명하고 있었는데 뇌가 가진 강력한 알고리즘 중 하나가 바로 편 가르기라고 한다. 이는 자신에게는 너그러워지면서 자신의 생각이 지닌 오류를 보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현실 왜곡에 이르게 되는데 즉, 허위 정보가 늘어나면 사회 안에서 지식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현실 왜곡이 심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겪고 있는 불안감의 원인이었다.
그렇다고 메타버스와 그 도구가 되는 인터넷의 발전을 막을 수 있는가? 저자는 현 세대를 4개의 세대로 분류하고 있다. 베이비 부머 세대, X세대, M세대, Z세대. 인터넷을 경험하지 못하거나 혹은 성인으로 자라난 이후에 인터넷을 접할 수 있었던 베이비 부머 세대, X세대는 아날로그 세대라 할 수 있지만 MZ세대, 특히 Z세대의 고향은 인터넷이라 역설하고 있다.
앞으로 세대를 짊어지고 갈 MZ세대에게 각인된 세계를 무시하거나 버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아날로그 세대들도 어느 정도는 거기에 맞춰가야 할 것이다. Meta라는 세계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기에 비관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라도 낙관적으로 만들 필요 역시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메타버스 사피엔스로의 장막은 이제 막 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