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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아빠 Jun 06. 2024

아빠가 되자 너무나 행복했으나

모든 주변 환경이 육아를 중심으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는 문제점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나는 그토록 기다리던 아기를 만나게 되었다. 정말 어렵게 만나게 된 아기였다. 


아기를 만나게 되던 날, 가족들은 내가 평상시에도 이래저래 감동해서 잘 우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기를 보자마자 내가 펑펑 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의 마음이 굉장히 차갑게 가라앉으며 복합적인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이제 아빠구나, 열심히 벌어와야겠다’ 


그 생각이 다른 감정을 앞섰다. 눈도 잘 뜨지 못하고 우는 아기를 보면서 ‘이 아기에게 많은 걸 주고 싶다’는 생각에 주먹을 꽉 쥐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많은 책임감이 느껴졌다. 누가 뭐라 한 적도 없는데, 커지는 책임감이 점점 어깨를 누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하루의 일과는 더없이 빡빡했다. 대부분의 아기를 가진 부모들이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일과들이었다.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늘상 울어대는 아기를 보며 혼자 큰 문제를 상상하며 지레 걱정하고 안심하고, 잠을 잘 자지 못하는 하루하루였다. 


그나마 이 시기에는 칼퇴를 해서 온통 가정생활에 집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돌보는 일은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직업적인 특성 덕분에 육아휴직을 하는 아내가 오롯이 아기를 돌보고 나도 칼퇴 후에 가정 일에만 집중하는 데도 체력적으로 너무나 버거운 하루하루였다. 온 세상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나 독박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 아빠들에 대한 경외감이 생겼다.





체력적으로 허덕허덕하고 있던 이 시기에, 또 하나의 고난이 닥쳐왔다. 코로나 시기로 인해 임신 중이던 아내는 바깥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출산 후에는 갓난아기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외출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집 값까지 계속 고공행진을 하자, 아내는 산후 우울이 와버렸다. 


아내가 힘겨워하기 시작해도, 나에게는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내를 울적하게 만드는 일, 힘든 일들을 가능한 내가 해치우려 했다. 집이 지저분하고 더러우면 집에서만 생활하는 아내가 우울함을 더 느낄까 봐 얼룩진 화장실 거울과 변기 주변 곳곳을 닦았다. 


나와 있는 물건들이 거의 없게 수납함에 정리했다. 아기를 돌보는 일을 내가 최대한 많이 맡으려 했다. 퇴근하면 집 안 청소를 해놓고 아내를 산책 보내고 아기를 돌봤다. 아내가 돌아오면 밥을 차려 먹고 아기 젖병 소독 등 기타 일들을 해놓고 잠시 기절하듯 졸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그리 넓지 않은 평수에 공무원 임대 아파트였다. 아파트 단지 차원에서는 정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단지 관리를 열심히 해주었다. 항상 쉬지 않고 뭔가를 하고 계시는 경비아저씨들을 보며 감사한 마음에 조용히 경비실에 이것저것 사다 드리기도 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굉장히 행복했다. 아버지에게 일명 ‘단칸방 신화’를 많이 들었기 때문인지, 시작부터 거창하게 시작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살게 될 이 임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니, 정갈하게 관리가 너무 잘되어 있고 깔끔해서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경비아저씨와 이웃들은 친절했고, 아기들과 아이들이 많아서 젊은 부부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꺄르르 흘러넘치는 동네였다. 


그런데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아기가 생기게 되자 모든 것이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코로나로 인해 집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고 좁은 집 내부만 계속 바라보고 있어야 하니 집에 이것저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내 집이 아니라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할 수도, 구조적인 문제를 바꿀 수도 없이 바라만 봐야 하니 답답함은 더욱 커졌으리라. 

결국 

‘이 집에서 내가 아이를 계속 키우고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거고, 

‘집 값은 계속해서 우상향이 아닌가? 시간이 지나면 영원히 집을 살 수 없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 집에 마음이 떠나버리자 집에 여러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어차피 ‘집’이라는 건 완벽한 집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이 어떤 상태이냐에 따라 작은 것도 더 좋게 보일 수도, 큰 것도 더 나쁘게 보일 수도 있다고 믿고 살아왔다. 그런데 점차 내 눈에도 보이기 시작하는 집에 단점들을 애써 모른척하기 위해 내 몸을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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