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우선이니까
황색 점멸신호처럼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내 하루의 감정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아기와 아내가 팔다리를 대자로 뻗고 둘 다 입을 살짝 벌린 채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의 모든 정신적 피로가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집으로 인해 불안해하는 아내를 보고 있자면 더 이상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무기력감이 몰려오곤 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부엌에 한 번 제대로 들어가 본 적도 없던 내가 닭곰탕, 미역국 등을 끓이고 장조림을 만들고 온갖 집 안일을 맡아서 하고 용돈을 절약해서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고 내 선에서 내가 생각하는 최선을 한다고 생각해도 결국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았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보다 훨씬 악조건에서도 가정을 이루고 서로 위하며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런 일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나?’ 하며 아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내 결혼 직후에 종종 아내가 “어릴 때 많이 돌아다녀야 했어서인지 내 집이 있으면 좋겠어요. 좋은 지역에 비싼 집이 아니라도, 그냥 깔끔한 내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냥 내 집만 있으면 우리 직업도 안정적이고, 무슨 상황이 와도 내 집은 있으니까 하고 안심될 거 같아.”라고 나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결국 나는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의 집 값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곧 조금이라도 안정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우울해하는 아내에게 항복 선언을 했다. “나는 지금의 집 값이 비싸다고 생각하고 대출을 몇 억을 받고 산 집 값이 흔들리게 된다면, 아마 이자에, 대출금을 갚느라 삶은 빡빡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굉장히 커질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모든 것 보다 우리 가족의 행복이 우선이니 대출을 얼마를 받아 어떤 집을 사든 여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이후에 생길 어떠한 상황에도 나는 여보를 원망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지 않을게요.”
사실 뭐가 정답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내의 불안만큼이나 내 불안도 이성적이지 않은 형태였다. 그냥 지금의 나와 아내가 있기 전까지 둘이 겪어 온 삶과 경험에 의해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을 뿐이다. 내 정체성에서 오는 불안인지, 그냥 투자에 대한 막연한 불안안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당장의 무리한 투자가 미래에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부담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직장에서도 육아한다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 걸어 다니는 일 없이 계속 뛰어다닐 정도로 바쁘게 보내다 헉헉 거리며 집 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작게 움츠리고 앉아 울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 건 세상 어떤 일보다 힘든 일이었다.
아기와 아내가 잠들고 난 저녁, 집 앞 놀이터에 혼자 앉아 밤하늘을 보며 ‘그래 돈이야 뭐 어떻게든 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가족의 행복이 중요한 거니까. 마음 다 잡고 아내의 결정을 지지해 주자. 잘 한 결정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한편에 불안은 여전히 있긴 했지만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어쩐지 밤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