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남아빠 Jun 13. 2024

그깟 대출, 얼마든지 받아서 행복해보자

가족이 우선이니까

황색 점멸신호처럼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내 하루의 감정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아기와 아내가 팔다리를 대자로 뻗고 둘 다 입을 살짝 벌린 채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의 모든 정신적 피로가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집으로 인해 불안해하는 아내를 보고 있자면 더 이상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무기력감이 몰려오곤 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부엌에 한 번 제대로 들어가 본 적도 없던 내가 닭곰탕, 미역국 등을 끓이고 장조림을 만들고 온갖 집 안일을 맡아서 하고 용돈을 절약해서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고 내 선에서 내가 생각하는 최선을 한다고 생각해도 결국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았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보다 훨씬 악조건에서도 가정을 이루고 서로 위하며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런 일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나?’ 하며 아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내 결혼 직후에 종종 아내가 “어릴 때 많이 돌아다녀야 했어서인지 내 집이 있으면 좋겠어요. 좋은 지역에 비싼 집이 아니라도, 그냥 깔끔한 내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냥 내 집만 있으면 우리 직업도 안정적이고, 무슨 상황이 와도 내 집은 있으니까 하고 안심될 거 같아.”라고 나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결국 나는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의 집 값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곧 조금이라도 안정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우울해하는 아내에게 항복 선언을 했다. “나는 지금의 집 값이 비싸다고 생각하고 대출을 몇 억을 받고 산 집 값이 흔들리게 된다면, 아마 이자에, 대출금을 갚느라 삶은 빡빡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굉장히 커질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모든 것 보다 우리 가족의 행복이 우선이니 대출을 얼마를 받아 어떤 집을 사든 여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이후에 생길 어떠한 상황에도 나는 여보를 원망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지 않을게요.”


사실 뭐가 정답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내의 불안만큼이나 내 불안도 이성적이지 않은 형태였다. 그냥 지금의 나와 아내가 있기 전까지 둘이 겪어 온 삶과 경험에 의해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을 뿐이다. 내 정체성에서 오는 불안인지, 그냥 투자에 대한 막연한 불안안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당장의 무리한 투자가 미래에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부담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직장에서도 육아한다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 걸어 다니는 일 없이 계속 뛰어다닐 정도로 바쁘게 보내다 헉헉 거리며 집 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작게 움츠리고 앉아 울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 건 세상 어떤 일보다 힘든 일이었다. 



아기와 아내가 잠들고 난 저녁, 집 앞 놀이터에 혼자 앉아 밤하늘을 보며 ‘그래 돈이야 뭐 어떻게든 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가족의 행복이 중요한 거니까. 마음 다 잡고 아내의 결정을 지지해 주자. 잘 한 결정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한편에 불안은 여전히 있긴 했지만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어쩐지 밤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이전 05화 '돈'이 자신을 좇지 않는 나를 비웃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