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 외엔 다른 방법이 안 보인다.
‘언 발의 오줌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일단 가정의 행복이 가장 우선이었다. 집은 사기로 했으니, 이제 조금 절약하고 돈만 더 열심히 벌어오면 될 일이었다. 고조되었던 감정을 조금 내려놓고 다시 일과 가정에 충실하려 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일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내는 나의 항복선언에 여기저기 집을 알아보는 듯했다. 그런데 집 값이 최고조에 오르다 보니 네이버에 떠 있는 매물조차도 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받을 수 있는 대출을 거의 최대한으로 받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임대 아파트와 비슷한 수준의 아파트 밖에는 살 수 없었다. 평수도, 구조도 거의 똑같았다. 그나마도 현장에 나가보니 매물도 거의 없다고 하고 부동산 여기저기에 집을 사려는 다른 젊은 부부들도 꽤 많이 보였다. 예상한 가격보다 오히려 더 비싼 매물 정도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평수가 커지고 조금 세련된 느낌이 들면 수도권의 아파트들은 대체로 10억이 넘었다.
아내는 아파트 매입을 포기한 건 아닌데 엄두가 잘 안나는 가격인 듯했다. 아내는 집을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더욱 울적해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자 나도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고 내 몸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가정에서 노력을 해도,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점차 분노인지, 절망인지, 체념인지 뭔지 모르겠는 녹진하게 끓어오르는 감정들이 내 안에 쌓이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육퇴만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이터에 나가서 앉아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들을 멍하게 바라보며,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다 놓아 버리고 되는대로 살까...’하는 답도 없는 생각들을 도돌이표처럼 하다가 집에 들어왔다.
그러다 불현듯 집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아기의 분유통들을 보며 혼자 다시 생각을 다잡았다. 나는 누가 나에게 강요한 적도 없지만 혼자 “나는 가장이야”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을 중얼중얼하며 다시 뭐라도 하기 시작했다.
뭐든 열심히 하다 보면 뭐가 되든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녁 7시 좀 넘어서 아기를 재우고 나면 8시 30분 정도까지 젖병 소독, 집 안 청소 등 하루의 일을 정리해 놓고 9시 정도부터 운동과 영어 중국어 공부, 독서, 독서록 작성, 일기 쓰기 등을 하기 시작했다. 두 시간 남짓 그렇게 자기 계발을 하고 나면 양말을 벗다가 소파에서 픽 쓰러져 잠들 때도 많았다. 한 번씩 새벽에 아기에게 수유를 하고, 아기 안고 앉아서 졸다가 출근하고, 운전하다 차에서 졸까 봐 허벅지를 꼬집는 일상들이었다.
대체로 이런 하루하루들의 반복이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열심히 살아야지!’가 내 어딘가에 아주 깊숙하게 똬리를 틀고 앉았다. 하지만 내 몸과 정신 상태는 그만큼 따라가지 못할 때도 많았다.
어떤 날은 육퇴 하기 한두 시간 전부터 육퇴 후에 또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겁이 날 정도였다. 몸은 바늘로 찌르듯 피곤했고 정신은 몽롱했다. 시원한 맥주 한 잔 먹고 뻗어서 자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 날은 결국 참지 못하고 저녁에 혼술을 빠르게 하고 육퇴 하자마자 기절해 버렸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육퇴 후에 이렇게 혼술을 하고 기절하듯 잠드는 나를 보며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차올랐다. 나 스스로가 굉장히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처럼 가족들에게 돈이 필요한 중요한 시기에 부동산도 주식도 하고 있지 않으면, 나에게라도 더 엄격하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