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영상보다는 나으니까?
당시만 해도 나는 대중에 노출되는 것을 굉장히 꺼려해서 인터넷상에 댓글도 달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문을 활짝 열고 나를 다 드러내겠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찰나의 관심도 끌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그런데 괜히 혼자 세상에 노출되는 게 싫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나 다음 카페에서 회원 가입할 때 울며 겨자 먹기로 글을 몇 개 남기는 것, 중고나라 거래 몇 개 말고는 당시까지 내가 인터넷에 댓글을 단 건 한 건이 유일했다.
나는 롯데자이언츠라는 야구팀의 오래된 팬인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강민호 선수가 ‘이제는 푸른 피의 강민호’하며 삼성 유니폼을 들고 웃고 있는 기사를 보았다. 퇴근하고 너무 충격적이어서 맥주를 한 캔 마시며 기사를 읽다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댓글을 남겼다. ‘어쩌다 이런 결정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응원하겠습니다….’ 새벽 두 시에 온 전남자친구 문자처럼 진한 미련을 풍기며 댓글을 달았다. 그런 내가 인터넷에 글을 올린다니.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 유행할 때, 친구들이 “야 너는 인스타 안 하냐?”하고 숱하게 물어왔어도 “다 늙어서 그런 거 해서 뭐 하냐.”하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한사코 시작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인터넷에 꾸준하게 글을 쓴다니.
어디에 쓸까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가장 접근이 쉬운 네이버 블로그를 열었다. 뭘 쓸지 생각도 해놓지 않고 갑자기 글쓰기로 마음을 먹은 거라, 화면을 보자 막막했다. 괜히 키보드 커서만 껌벅껌벅 거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들에게 내가 나눌만한 이야기가 있던가?’ 한참 이리저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러다가 책에서 말한 한 문장이 떠올랐다. 어디서든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이야기. 초보에게는 왕초보들이 있으니 왕초보에게 초보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방법도 있다는 이야기. 그 생각을 하자 좀 더 자신감이 생겼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굉장히 다양한 취미활동들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 디자인을 나름대로 이리저리 바꿔보고 블로그 새 글 작성을 누른 후에 ‘앞으로 이것저것 취미 관련된 내용을 올릴 거다!’ 하는 선언 형태의 단순한 글을 작성해 놓고 발행 앞에서 또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두 눈을 꼭 감고 발행 버튼을 눌렀다. 도저히 두 눈을 부릅뜨고 내가 올리는 글이 발행되는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실눈을 뜨고 발행이 완료되었음을 확인했다. ‘휴... 별문제 없이 포스팅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많은 연예인들과 유튜버 크리에이터, 회사들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잠시라도 끌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한다. 온갖 심리학 기법을 다 이용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1초라도 더 붙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판에, ‘내가 대중에게 노출이 많이 되면 어떡하지?’하는 참 가당치도 않은 걱정을 혼자 했다. 마치 헬스 처음 시작하는 여성분들이 ‘저는 근육이 잘 붙는 스타일인데 헬스 하다가 팔다리가 울룩불룩해져서 보기 싫어지면 어떡하나요?’하고 고민하는 모습과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도무지 깨질 거 같지 않던 나의 생각을 깨고 어렵사리 글을 올렸다. 막상 첫 글이 올라가니 자연스럽게 ‘다음에는 무슨 글을 올려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이버에 블로그 관련 글들을 쭉 찾아보니, 너무 복잡했다. 뭐 네이버 로직이 어떻고, 무슨 홈페이지들을 이용해서 키워드를 뽑아내고, 상위 노출을 하기 위한 방법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어서, ‘이번에도 그냥 먼저 부딪혀보자.’ 싶었다. ‘내가 해 온 취미생활 중에, 예전에 정보가 별로 없어서 한참 찾아봤던 것들이 뭐가 있을까?’ 하고 경험을 더듬어보았다. 그랬더니 배드민턴 처음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는 것인지 엄청 막연했던 기억이 났다.
배드민턴은 혼자 할 수 없으니 보통 클럽활동을 기반으로 하는데, 그 클럽은 어디서 찾는 것이며 가격은 어느 정도 생각해야 할지 등등에 관한 정보가 굉장히 없어서 아는 사람에게 물어 물어 확인했었다. 그 내용들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기억을 더듬기도 하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올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정보들을 찾아보고, 배드민턴을 여전히 하고 있는 친구에게 확인도 했다. 그러다 보니 블로그 포스팅 한 개 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글 세네 개를 올렸고, 별 기대는 하지 않고 다음 올릴 글을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