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 작. 썰. 제6화 : 대법원 2018도3617호 판결
사건의 주인공은 현대 도시의 익명성 뒤에 숨은, 우리 시대의 전형적인 디지털 군주였다. 그는 물리적인 영토 대신 인터넷 사이트라는 가상의 왕국을 건설했다. 그곳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자유롭게 거래되는, 법의 그림자가 닿지 않는 해방구처럼 보였다. 그는 음란물 등을 유통했고, 도박 사이트 광고를 통해 자신의 왕국을 유지할 자금을 확보했다.
이 왕국의 화폐는 당연히 비트코인이었다. 국가나 은행의 간섭 없이, 오직 암호화된 신뢰만으로 가치가 유지되는 완벽한 통화. 익명성과 탈중앙성. 비트코인은 그의 디지털 왕국을 지탱하는 혈액이었고, 그의 범죄 수익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난공불락의 금고였다. 그는 이 금고 안에서라면 영원히 안전할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왕국은 결국 무너진다. 그는 검거되었고, 그의 범죄 목록은 길었다. 검찰은 그에게 징역형과 함께, 범죄로 벌어들인 13억 원의 추징을 요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디지털 금고 안에 잠들어 있던 216 비트코인에 대한 ‘몰수’를 선언했다.
유체물에 대해서 인정되던 몰수가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디지털 코드에 대해서도 과연 인정될 것인가?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16억 정도의 가치였던 비트코인, 2025년 현재가로 환산하면 무려 323억에 해당된다. 몰수되지 않고 피고인이 그대로 보유하였더라면 그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법정에서 변호인이 던진 질문은 사실상 법이라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도전이었다.
“비트코인은 실체가 없습니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죠. 정부나 은행이 보증하는 화폐도 아닙니다. 이것은 그저 복잡한 암호 코드의 나열일 뿐입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이 데이터를 어떻게 ‘재산’이라 부를 수 있으며, 국가가 무슨 권리로 그것을 빼앗아 간단 말입니까?”
그것은 낡은 언어로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법의 언어는 지금까지 ‘물건’을 기반으로 구축되어 왔다. 땅, 건물, 자동차, 현금. 모두 명확한 물리적 실체를 가졌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달랐다. 그것은 오직 네트워크 안에만 존재하는 관념이었고, 신기루 같은 가치였다. 법은 과연 이 새로운 존재를 자신의 문법 안으로 포섭할 수 있을 것인가. 법정은 한순간, ‘재산’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재정의하기 위한 언어의 전쟁터가 되었다.
대법원의 대답은 지극히 실용적이었다. 법은 비트코인의 철학적 본질이나 기술적 구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것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주목했다.
환전 가능성: 대법원은 물었다. “그래서, 그걸로 짜장면을 사 먹을 수 있는가?” 답은 ‘그렇다’였다. 비트코인은 거래소를 통해 언제든 원화로 환전할 수 있다. 즉, 명백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식별 가능성: 법은 다시 물었다. “수많은 비트코인 중에 당신의 비트코인을 콕 집어낼 수 있는가?” 답은 역시 ‘그렇다’였다. 비트코인은 고유한 전자주소를 가지며, 모든 거래 기록이 블록체인이라는 공개 장부에 남는다. 물리적 형태가 없을 뿐, 객관적으로 특정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비트코인을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의 재산’이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단순한 법리 해석을 넘어선 하나의 선언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고, 실체가 없는 유령과 같은 것이라도 상관없다. 그것이 시장에서 돈으로 바뀌고, 사람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면, 존재하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 법의 지배를 받는다.” 법은 그렇게, 새로운 시대의 언어를 자신의 방식으로 번역했다.
이제 법의 시선은 당신의 은행 계좌나 집 안의 현금만을 향하지 않는다. 당신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국가는 당신의 ‘디지털 지갑’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볼 권한을 갖게 되었다. 당신이 범죄 수익을 코인으로 바꿔 익명의 세계로 도망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시스템은 그것을 단순한 암호 코드가 아닌, 추적하고 몰수해야 할 ‘은닉 재산’으로 규정할 것이다.
가상자산의 가치가 크게 오를수록 그 필요성은 더 커진다. 비트코인의 국가 보유는 대부분 범죄수익을 몰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물론 부탄처럼 오로지 채굴로 12,200여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한 국가도 있다. 채굴에 필요한 전기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풍부한 수력발전자원이 있고, 코로나 사태로 줄어든 관광수입을 충당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이 이루어낸 결과이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는?
미국이다. 총 21만개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당시 가격으로 28조에 이르는 천문학적 금액이었다. 현재까지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면 평가금액은 물론 더 올랐을테니 국가재정에 큰 도움이 되는 든든한 재원 일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자가 법화를 소유하지 않고, 디지털코드인 비트코인을 보유하다 몰수 된 것 자체가 국가입장에서는 큰 횡재가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한 결과라 하겠다.
소개한 대법원 판결은 디지털 코드의 재산가치를 명확히 인정한 시금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