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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挑戰) 일까 아니면 또다른 일탈(逸脫) 인가?

정말 모든 직장인에게 탈출하고 싶은 생각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늘 있는 일인가보나. 그런데 말이다, 이런 생각이 가장 많이 드는 시점은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에 자주 찾아온다.


반도체 장비 회사의 생산관리 일은 사이클이 있다. 전체 반도체 메모리 업종의 경기 사이클이 있는 것처럼 장비 제조도 유사한 사이클이 존재한다. 그나마도 H반도체는 전진생산계획을 주로 사용하고, 국내 업체 보다 해외 수출을 많이 했음에도 제조 사이클은 어쩔 수 없이 존재했고, 더욱이 사내에서 안정화까지 약 3년간 진행된 ERP 구축 프로젝트와 바코드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여지없이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찾아오고 말았다.


우선 이번에는 도전(挑戰)이라고 해보자. 인천에 근무하다, 외국계 장비회사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헤드헌팅사를 통해 이름도 낯설었던 평택이라는 도시의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최근에 와서야 반도체 장비업체 중 후공정 업체들이 좋은 대우를 받고 있지, 후공정 업체가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는 시기는 아니었기에 일본계 장비 업체에서 이직 제의를 받았을 때 이직을 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기숙사도 제공이 되었고, 급여 조건도 H반도체 보다 조금 인상되었고, 1년 이상 근무를 하면, 일본 본사에서 순환 근무의 기회도 얻을 수 있는 회사였기에 도전을 하기로 하고 평택으로 내려갔다.


평택으로 내려가서 처음 시작한 것은 운전을 하기위해 시내 연수를 받기 시작했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숙사에 있겠지만, 기숙사가 회사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빨리 집을 구해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한 회사에서의 문서 양식에 한자를 많이 사용하기에 가능하면 빨리 적응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일본어 공부도 시작을 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는 체력이 좋았기도 했고, 사람이란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없던 힘도 생겨난다고 하는데 규모가 큰 외국계 기업으로 스카우트되서 이직을 한 시점이니 얼마나 업이 되어 있었을까? 나는 몰랐지만 당시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내가 한동안 매일 웃고 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이직한 회사에서는 내가 이전에 H반도체에서 구축했던 같은 ERP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고, PM으로 내려오신 분도 같이 일을 해서 아시는 분이 PM으로 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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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진생산계획 (Forward Scheduling): 현재를 기점으로 순차적으로 계산해 목표달성 시기를 추정하는 순행 스케줄링 [출처] 역산 스케줄링(Backward Scheduling) 하자!|작성자 제약일꾼 팜유

* 후진생산계획(Backward Scheduling): 미래를 기준점으로 역산해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역산 스케줄링 [출처] 역산 스케줄링(Backward Scheduling) 하자!|작성자 제약일꾼 팜유

* 프로젝트 PM: 프로젝트의 계획, 실행, 조정 및 평가를 담당하는 전문가.



잘 적응을 해가고 있을 때 회사에 시끄러운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왜? 이직한지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 규정이 바뀐다고 하는 것인지? 호사다마(好事多磨)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지금도 그런 회사가 많겠지만 당시에도 우리나라의 많은 중소, 중견 기업들은 포괄임금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초과 근무를 하더라도 수당을 모두 받는 경우는 드물고, 사전에 회사에서 정한 일정 금액을 수당으로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주 40시간이니 52시간이니 하면서 일을 하던 시절도 아니었으니 1년간 받는 연봉에는 계약된 기본 연봉 외에 초과 근무 수당과 연차 수당까지 생각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런데 수당이 줄어든다고 하니, 이걸 어찌 하여야 하나?


그렇지만 회사에서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회사의 수당 지급 규정이 바뀌는 것이니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떠나냐 하는 상황인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운전을 배워 중고차를 구입은 했지만 집은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일을 고민하다 H반도체에 문의를 해보기로 했다. 혹시 아직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면? 이라고 무슨 말이지? 하겠지만 말그대로 재입사를 문의했다. 내가 나간 자리에 아직 사람을 뽑지 못했다면 다시 돌아가도 될지 문의를 해 보았고, 몇일 후 재 입사를 받아 주겠다는 회신이 왔다.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 간혹 있는 일이니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고, 나 이전에도 재입사 케이스는 몇

번 있었던 것으로 안다. 물론 매우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는 경우다. 평택에서 정확히 한달을 근무하고 바로 다음날 다시 H반도체로 출근을 했으니, 내 입장에서만 생각을 해보면 한달간 조금은 더 잘된 시스템을 공부하러 다녀왔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 이 때 일본계 회사에서 “분산제작 혹은 병렬제작” 이라는 제조 방식을 볼 수 있었고 이렇게 보았던 것은 H반도체로 돌아 갔을 때 그리고 다시 평택의 T사로 이직을 해서 생산관리 업무 할 때 스케줄링 방법에 잘 적용해서 사용을 했고, 제조 기간 단축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달이라는 기간의 도전은 아쉽지만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이직은 하지 못했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본계 회사에서 좋은 시스템을 보고 왔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때 도전하지 않았다면 병렬화 제작에 대해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부분은 모두 정신 승리하며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번 도전으로 인해 승진은 1년이 늦어지는 결과가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1년 늦은 승진이 또 다른 일의 시작이 될 줄은 이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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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사다마(好事多磨): 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 또는 좋은 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 병렬화: 병렬성은 여러 작업을 실제로 동시에 처리하는 것.

* 정신승리: 본인에게 불리하거나 나쁜 상황을 오히려 자신에게 긍정적인 상황으로 인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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