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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Miracle)

가야 할 때가 되면 갈 곳이 생기는 것인가? 신촌 만화방의 작은 회사에서 사장님과 정리를 하는 것으로 협의가 되었을 때, 신촌에서의 즐거운 생활이 막을 내리려고 하는 바로 그때 이직을 하고 싶었던 H반도체에서 연락이 왔다. 이력서를 내지 않았던 회사 인사팀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면접을 볼 생각이 있냐고?


아마도 SY테크를 다녔다는 것과 ERP 시스템의 구축 이력이 H반도체에서 연락이 온 이유가 아닌가 한다.

2010년 이전만 해도, SY테크, H반도체 그리고 S사 계열의 S크론이 대표적인 반도체 후공정의 장비 제조 업체였고 이 세 회사간에는 꽤나 많은 인력이 이동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설계 혹은 구매의 경우 경쟁사로의 이직을 제한하는 비밀 보호 규정에 싸인 후 퇴사를 하기에 퇴사한 직원이 고소를 당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던 시기이다.


어찌되었건 즐거웠던 6개월간의 일탈(逸脫)을 마무리하고 H반도체에 입사했다. 이 회사부터 진짜 나의 생산관리 스케줄러(Scheduler)로서의 경력이 시작된다고 본다. 그리고 정말 배워야 하는 것이 많았다. 가공도면의 생산팀 별 구분을 배워야 했다. 하나의 제조부분은 조립과 테스트 부분으로 나뉘고, 부품을 가공하는 생산팀은 4개 팀으로 나뉘어 있기에, 하나의 도면이 어느 생산팀에서 시작하는지 분류하는 것이 생산관리팀의 첫번째 업무 시작이다.

생산관리팀의 주요 업무는 사내 생산 능력을 고려해서 적정한 시점에 계획생산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근무했던 장비 회사 중 계획생산 프로젝트를 운영 했던 회사는 H반도체의 운영 시스템이 가장

안정적이었다. 계획생산을 할 수 있나는 것은 전진생산계획 (Forward Scheduling)과 후진생산계획(Backward Scheduling)을 혼용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생산부분과 제조부분의 능력을 최대치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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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Miracle):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국어사전]

* 전진생산계획 (Forward Scheduling): 현재를 기점으로 순차적으로 계산해 목표달성 시기를 추정하는 순행 스케줄링 [출처] 역산 스케줄링(Backward Scheduling) 하자!|작성자 제약일꾼 팜유

* 후진생산계획(Backward Scheduling): 미래를 기준점으로 역산해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역산 스케줄링 [출처] 역산 스케줄링(Backward Scheduling) 하자!|작성자 제약일꾼 팜유



그 외에도 전진생산계획 (Forward Scheduling)을 운영 할 수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여러 장비회사에서 생산관리 스케줄러로서 근무하면서 H반도체와 다음에 이야기할 T테크를 제외하고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서, 설계 부분과 가공 부분에서 관리하는 기준정보가 얼마나 부실했던지

영업, 설계, 제조, 구매팀 간에 의사 소통에 많은 문제가 있음이 알고도 해결할 수 없었다는 게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생산관리팀은 그 외에도 생산팀과 제조팀에서 계획된 프로젝트가 일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지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매주 진행되는 생산판매 회의를 주관한다.

이렇게 천천히 H반도체의 업무를 열심히 배우며 한 분기 정도의 시간을 흘렸을 무렵, H반도체의 코스피 상장 준비 이야기가 들여오기 시작했다. 역시 그랬다. SY테크에서의 ERP 시스템 구축 이력이 나를 이 회사로 이끌었다. 얼마 있지 않아 ERP 시스템 구축 TF가 구성되었고, 나는 생산, 제조, 원가 부분을 담당하는 담당자로 하루에 절반 이상의 시간을 TF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스케줄러의 일을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그랬다. 정말 원하는 것이 있다면 구체적인 내용을 적어 늘 몸에 지니고 다니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 진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04년 당시 H반도체는 반도체 후공정 장비업체에서 가장 규모가 큰 회사이다. 근무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하다 보니, 나에게 기회가 왔다는 것이 나는 작은 기적 이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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