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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白手) 탈출 그리고 이직

20주를 필리핀에서 어떻게 보냈을까? 그라고 필리핀의 다바오라는 도시는 어떤 도시였을까? 그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한국 사람이 알고 있는 필리핀과는 다르다’이다. 그래서 15년째 매년 여름 다바오를 방문한다.


그렇게 20주 동안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추운 겨울이 시작하는 2010년 12월초 돌아왔다. 돌아왔을 때 나는 백수가 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약 한달간 열심히 이력서 갱신을 했다. 그동안 관리하고 있지 않던 이력서 사이트에 접속을 해서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약 10년간 진행했던 프로젝트와 회사에서 받았던 수상내역을 위주로 열심히 업데이트를 하고 있을 때, 두 군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한곳은 안산에 있는 회사였는데 모니터관련 부품을 제조하는 회사였고, 시스템 구축을 위해 중국에서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다른 하나의 회사는 5년 전쯤 나에게 이직 실패 아픔을 주었던 평택 부근의 반도체 장비 제조 회사였다. 면접은 안산에 회사부터 보았는데, 생산관리 업무 보다는 시스템 구축에 관하여 주로 질문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평택의 T사는 생산관리에 대해 많이 질문을 받았고, 시스템 구축을 같이 해 주었으면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곧 상장 예정이기 때문에 입사를 하면 우리 사주 포함 여러 복지 혜택이 있음을 면접 중에 이야기해 주셨다. T사의 경우는 헤드 헌터를 통한 면접 건이다 보니, 입사 시 사이닝 보너스가 있었고, 보너스는 1년을 재직하지 못하면 반환하는 조건 이였다.

아마도 T사에서 유심히 봤던 경력은 H반도체의 ERP 시스템 구축 이력과 MES 시스템 구축에 대한 내용 이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렇게 두 회사에 면접을 보고, 조언을 구하고자 H반도체의 감사님과 통화를 했다. H반도체 재직 시절 어쩌면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시고, 조언을 해 주셨던 감사님께 두 회사의 이야기를 드리고, 어디에서 일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부탁드렸다.


당시 감사님께서는 T사를 추천하셨다. 지방에 있는 회사이기는 했지만, 반도체 전공정 업체의 사업 전망이 밝고,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조언을 해 주셨다. 중국과 관련한 모니터 관련 제조업은 당시에는 회사 매출규모면에서 크기는 했지만, 오래 지속되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는 말씀이 지금도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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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 만 19세 이상인 성인이면서 직업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정확한 의미는 근로 능력이 있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는 모든 사람을 지칭한다. [나무위키]



이렇게 감사님의 조언과 헤드 헌터를 통해 입사시 받게 되는 여러 조건을 고려해서, 평택이라는 도시로 다시 향하게 되었다. 한번 도전에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꼭! 정착한다는 마음으로 1호선 전철을 타고 회사가 위치한 오산으로 내려갔다.


오산에 도착을 하고 여러가지 놀랐던 것들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우선 배정받은 기숙사는 신축 아파트로 회사에서는 6km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도시 촌놈인 나에게 오산이라는 도시는 적응하는데 쉽지는 않았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불편한 대중 교통이다. 서울, 인천에서의 전철과 수시로 다니는 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자동차 없음’이 이곳에서는 큰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물론 5km정도라면 1시간 정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기는 했지만, 당시 회사 입구로 들어가는 길은 2차선 도로로, 야간에 대형트럭이라도 지나가는 때에는 매우 위험하기도 하고, 지금처럼 개발이 끝난 상황이 아니었기에 도보로 출퇴근하는 것은 다소 무리였다. 한가지 다행인 건 기숙사에 많은 인원이 살고 있었기에 그나마도 출근 시에는 카풀을 통해서 출근 할 수 있었고, 퇴근은 상황에 맞게 오산 시내로 나가는 직원이 있을 때 퇴는 하거나, 가끔 한시간에 한대 다니는 버스를 타고 버스 시간에 맞게 퇴는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두번째 불편함은 기숙사로 사용하던 아파트 주변에 상가가 없었다는 것, 약국이 없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볼 곳이 오산 역외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요즘도 가끔 그런 곳이 있긴 한데, 신축 아파트다 입주하더라도, 구 도심으로 다니던 버스 및 대중 교통의 노선은 쉽게 바뀌지 않는 다는 것, 그리고 버스 노선이 신축 아파트 부근으로 쉽게 신설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구가 20만 정도로 작은 시이다 보니, 문화 시설과 쇼핑 시설이 충분하지 않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영화를 볼 수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오산역 외에는 없었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매주 영화를 보는 게 취미였던 도시 촌놈에게는 저녁 시간에 갈 곳이 없다는 것도 커다란 문제이기는 했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도 오산에 머물기 보다는 부천으로 매주 올라오게 되고, 오산에 14년을 살면서도 주말을 오산에서 보낸 기억이 없다. 오산하면 자취하던 원룸과 이마트 그리고 몇 년 전 개관한 오산 중앙 CGV가 기억에 전부이다.

이러게 낯설고 조용하고 작은 오산이라는 도시로 이사해서 T사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1년 1월부터 시작된 오산/평택의 생활은 조금씩 안정기를 찾아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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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 경기도 서남부에 위치한 . 남쪽으로 평택시, 나머지 3면으로 화성시와 접하는 작은 도시이다.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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