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挑戰)해보자
정말이지 나에게만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은 아니다. 또 다시 3년이 지나고 다시금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꿈틀한다. 나이도 이제는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고, 회사 생활도 10년을 넘게 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이 4번째 회사다. 물론 첫번째보다는 두번째가 그리고 세번째가 근무 기간이 길었고 중간에 2번 정도의 아주 짧아서 이력서에 쓰지 않는 2번의 숨은 경력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에 불어온 바람은 영어공부이다. 그 시작은 3년전쯤 재입사를 하면서 1년 늦어진 승진 문제와 재무부분의 동갑내기 직원의 어학연수 바람이 그 시작이다.
인천에 있었던 H반도체는 특이하게도 승진 발표가 3월 이후에 진행된다. 당시에 S사의 계열사인 S크론과의 경쟁 때문인지 또는 주변 회사들의 인사 고과 및 연봉 인상을 모두 확인하고 그보다 좋은 대우를 해주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특이하게 봄이 다 끝나가는 무렵 승진 발표를 하는 것이 회사의 전통이었다.
새로운 도전에 작은 싹은 3월 발표 났던 승진이 시작이다. 월급쟁이에게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기분 좋은 것은 그저 몇 년에 한번 있는 승진과 매년 조금씩 오르는 급여 인상, 그 외에 즐거움이라는 게 있을까?
일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기는 한데, 일부분 일을 통해 개인이 성장하는 것도 직장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한가지 이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그런 허울뿐인 말, 정신 승리에 가까운 일에 대한 보람 보다는 역시 직장 생활 중 최고는 금융치료인 급여 인상과 남들보다 빠른 승진이 최고에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일본계 회사로 잠시 다녀오면서 과장 승진이 1년 늦게 되었으니, 과장 2년차에서 차장이 되는 건 조금 빠른 느낌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또 견디기 힘든 건 영업부 소속의 직원이 차장 승진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나보다 입사가 늦은 직원이 말이다. 이때 조용히 있을 것인지 승진을 요청 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했는데, 사실 당시 총괄 부사장에게 잘 보였던 상황도 아니 였기에 그저 아쉬운 소리 몇 마디 하고 조용히 마음에 삭히고 있었다. 총괄 부사장이 영업과 생산 쪽을 총괄하지만, 생산관리를 담당하면서 영업에 늘 잔소리하는 스케줄 담당인 나를 곱게 봤을 리가 있겠는가? 영업이 어렵게 받아온 Project라고 사내 생산, 조립 능력대비 오버하는 경우 일정을 조정하라고 늘 잔소리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지 되었건, 생산 일정관리 담당 입장에서 일정이 부족한 Project를 수주해 오는 영업 사원에게는 절대 좋은 소리를 해주지는 않았다. 그럴 땐 총괄 부사장도 일방적으로 영업편을 들 수는 없다. 철야를 매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내부적으로는 일정을 조율해야 하는 게 필요했으니,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 같은 담담의 승진 문제를 신경이나 썼을까? 그저 위로 한다는 말이 늦게 알았다. 미안하다는 립 서비스 정도로 마무리하여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마음이 아픈 3월을 보내고 따스한 봄이 다 가는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는 계절에 재무팀의 동갑내기 직원이 어학연수를 캐나다로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국 사람은 사돈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죽은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 사람의 심리가 그렇다 하는 말을 듣고 보니 나 또한 그 말이 틀리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37살 동갑내기 유부남이 어학연수를 가는 것과 내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승진이 밀린 게 신경도 쓰이고 있던 차에 어학연수 소식은 그저 숨죽이고 있던 작은 불씨에 강한 돌풍으로 불어와 활활 타오르게 해준 역할이 다이다. 우선은 회사에 휴직 문의를 해보았다. 연수가 끝나면 돌아오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말이다.
당연히 돌아온 대답은 휴직 불가였다. 예상하고 있었던 사항이니 당황스럽거나 그런 건 아니였다.
한번 재입사를 받아 주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두 번, 세번, 필요 이상의 혜택을 줄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 길로 종로로 향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2010년 당시 많은 유학정보 사무실이 종로에 모여 있었고
나 또한 연수 정보를 확인 하기위해 종로에 한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때가 무더운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어 가는 2010년의 6월쯤 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2주 정도 시간이 지난 7월초 회사를 퇴사하고 필리핀에 작은 도시의 어학연수 시설로 20주짜리 연수를 갔다. 도착한 도시는 필리핀 최남단에 민다나오섬의 다바오(Davao)라는 도시이다.
[출처: Google Earth]
이 때 나의 친구들은 모두 다 나에게 미쳤다고 한마디씩 했던 게 기억난다. 영어가 뭐라고? 퇴사를 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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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반도체 및 경험했던 회사들의 승진 연한: 사원 4년-> 대리 4년 -> 과장 4년 -> 차장 3년 -> 부장
부장 승진 대학 졸업 후 15년 (대학원 졸업의 경우 사원 3년 후 대리, 특진이 있는 경우 조금 단축)
* Davao의 소개는 BOOKK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여행 Davao’라는 책을 통해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