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고객님은 아주 상황을 잘 파악하고 계시네요. 주변인들의 편견과 질시가 고객님의 걱정으로 연결되는 것이네요.”
사장은 먼저 칭찬을 했다. 그리고 바로 특기인 공감하며 자기 생각으로 끌어들이기가 나왔다. 보통 우리는 친구가 걱정을 하거나 불평을 하면 너는 잘못한 거 없어, 하며 어쭙잖은 위로를 하려고 하거나 참 안됐다라며 영혼 없는 동정하기를 시전한다. 반대의 경우는 언제부터 그랬는데? 왜 그랬는데?라며 신문을 하기도 하고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하며 상대의 생각을 바로잡으려고 든다.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해야 해,라는 어설픈 조언을 하거나 아니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말이지,라며 한술 더 떠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한다. 아니면 그건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거기서 어떤 것을 배워,라며 가르치려 든다. 더 극단적인 경우는 그만하고 기운 내라며 말을 끊어 버리거나 그 말 들으니까 말인데,라며 자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이건 우리가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다른 사람의 기분을 더 좋게 해 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인데 대부분의 경우 그런 반응은 역효과를 낸다. 하지만 사장은 잘 들어준다. 상대의 말을 반복하고 공감하며 경청을 하는 것 같지만 교묘하게 남의 생각을 자기가 앞으로 설득할 내용으로 바꾸어 반복한다. 그러니까 사장은 처음부터 고객의 문제를 들어줄 생각도, 해결해 줄 생각도 없는 것이다. 상대의 기분을 좋게는커녕 더 불안하게 만들어 보험을 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역으로 효과 만점의 상담사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의 감정에 전혀 공감을 안 하기 때문에 상담이 오히려 더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자신이나 가족의 문제는 쉽게 답이 보이지 않지만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타인의 문제는 답이 빤히 보이는 이치와도 같다.
“네. 그런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의 태도 때문에 강박이 생긴 거 같아요. 뭘 만져도 항상 손을 씻어야 하고 비염 때문에 목이 아프면 코로나19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과 걱정까지... 요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데 병원 가 봐야 할까요?”
“아니요. 병원에 가는 건 너무 오버인 거 같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다닌다면 또 사람들이 카이스트 운운하면서 비난하겠죠.”
“네. 맞아요. 공부만 해서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겼다, 역시 천재들은 정신에 문제가 있다. 또 그러겠죠.”
이 공부만 해서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겼다, 역시 천재들은 정신에 문제가 있다라는 말을 사장과 그 파리한 남자는 동시에 말했다. 마치 테너와 베이스가 합창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서로 쳐다보며 씩 웃었다. 드디어 사인의 시간이 찾아왔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까요, 선생님?” 마치 의사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로 파리한 남자가 물었다.
“네. 물론입니다. 저희만 믿으세요. 고객님은 시간이 지나면 완벽하게 정상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그렇겠지. 매일매일 1만 원씩 생돈 쏟아부으며 월급이 줄줄 새어 나가면 어떻게라도 정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니까.
“차츰 나아지지만 가끔 건강에 적신호가 올 수도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답답해지고 두근거릴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저희가 함께합니다.” 사장은 사인할 펜과 계약서를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공감과 위안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고, 그게 걱정이 되었든 비밀이 되었든 무언가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장은 그 사실을 정말 잘 알고 있고 십분 이용하고 있었다. 이 점이 내가 사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공감은 같이하는 것이고 이해나 동정은 멀찍이 떨어져서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둘의 차이를 잘 모른다. 우리는 고객이 겪는 고통과 함께 있어 준다는 이유로 돈을 받는 것이었고, 우리에게 걱정을 넘겨 버렸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은 기꺼이 매일매일 1만 원을 지불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