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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규 Aug 23. 2024

걱정보험 주식회사

#5

  “아, 그러세요? 타지에서 홀로 그 걱정과 두려움을 이겨내느라 얼마나 힘드실까.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저희 걱정보험 주식회사가 함께합니다. 고객님은 혼자가 아니세요. 고객님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많은 고객님들이 이미 저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평생 고객님과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평생 함께할 준비가 아니라 평생 매일 1만 원씩 받을 준비가 된 거겠지. 말은 똑바로 해야지. 그러면서 사장은 1만 원 자동이체 방법을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그 여자가 손을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 몇 번 자동이체 거는 걸 실패하자 손수 핸드폰 조작까지 도와주면서 매일 1만 원 자동이체를 성사시켰다. 이거 보세요. 저희는 모든 일을 함께합니다라는 강아지 풀 뜯어 먹는 소리까지 추가하면서. 

  나도 이 여성과 마찬가지로 사장의 개소리에 넘어간 케이스다. 이 여성은 매일 1만 원씩 돈만 내면 되지만 나는 하루 거의 온종일을 사장과 붙어 지내야 한다. 걱정보험주식회사를 찾았을 당시 나는 불면에 의한 불안 증세로 몸 이곳저곳이 다 아픈 상태였다. 그때 나에게 사장은 내 마음을 다 이해해 주는 친구, 나아가 정신과 의사, 아니 설교만 듣고 있어도 회개가 절로 되는 교회 목사 같은 존재였다. 사장은 나에게도 이렇게 말해 주었다.  

  “원치 않는 불안한 생각과 신체적인 증상 때문에 많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불안장애는 공황장애, 강박증, 사회공포증 등을 포함하는 상위개념의 질환으로, 머리로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지나친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고 이로 인해 신체적인 반응이 동반되는 질환입니다.” 

  병원에서도 진단을 내리지 못하는 내 증상을 사장은 정확히 진단 내려 주었다. 나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고 다 병 때문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분들은 매 순간순간 많은 걱정과 불안으로 힘들어 하십니다. 원치 않는 불안한 생각과 걱정이 지속되고 이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게 되지요.”    사장은 당시 나에게 닥친 상황을 마치 본 것과 같이 훤히 알고 있었다. 

  “불안장애의 치료는 원인과 유형에 따른 맞춤치료가 필수입니다. 불안장애가 유발된 원인이 심리 사회적 원인 때문인지 신경학적인 이유 때문인지 혹은 두뇌 기능적 원인 때문인지 등에 따라 환자의 병증과 증상에 맞는 치료를 하게 됩니다. 양방에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 계속 반복되면서, 본인도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방법이 없어 불안을 느끼는 경우를 강박불안장애라고 합니다. 한방에서는 심신의 약화를 이유로 보는데, 불안장애 치료는 크게 한약 치료, 두뇌 훈련 그리고 심리상담으로 이루어집니다. 약물을 사용하여 불안반응을 강제적이고 일시적으로만 억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균형이 깨진 뇌 기능과 신경계를 자연스럽게 회복하도록 돕고 스스로 외부자극에 대한 민감도를 조절하는 힘을 기르는 치료를 진행합니다.” 

  사장은 양방, 한방 등 모든 의학에 정통한 신화에나 나오는 의사 같았다. 

  “아. 병인 건가요?”

  “양방학의 관점으로 보자면 우선적으로는 강박불안장애를 생각해 볼 수 있고, 여러 요인을 고려해서 상담을 진행하게 됩니다. 필요하다면 약물 치료를 할 수도 있습니다. 돈이 들지요. 아주 많이 들지요.”라며 돈이 별로 없는 내 상황을 어떻게 알았는지 겁을 줬다. 

  나는 병원을 무서워했다. 알약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첫 경험 하는 것만큼이나 겁나고 병원에 들어가면 죽어서 나오는 줄로만 알고 살았다. 실업급여를 받고 있던 나에게 병원비는 우리 집의 기둥을 몇 개나 뽑아야 하는 암 치료비 같아 보였다. 그래서 하루에 1만 원만 내면 되는 걱정보험비가 싸게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속았다는 느낌이다. 내가 지금 그걸 팔고 있지만. 

  “한방에서는 개별 증상과 변증에 따라 맞춤 한약을 처방하며, 두뇌 훈련과 인지행동치료 및 신체 반응 완화를 위한 침 치료를 병행하여 치료합니다. 한방치료도 돈이 들지요. 이것도 많이 듭니다.” 

  사장은 그 불쌍한 여성 고객에게도 겁을 줬다.   

  “아, 정말이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면 환자가 가지고 있는 인지 왜곡의 수정을 통한 생각 습관의 교정을 위해 심리상담을 시행하게 됩니다. 돈이 많이 들지요. 정신건강의학과는 비용이 아주 많이 듭니다. 거의 장마철 비 오듯이 후드득 떨어집니다. 비용만이 문제가 아니죠. 심해지면 정신병원에 끌려가서 강제 수용될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에서 한 해에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환자 수가 몇 명인지 아십니까? 자그마치 6만 5천 명입니다, 6만 5천 명! 그런데 한 해에 퇴원하는 사람은 몇 명인지 아십니까? 놀라지 마세요. 단지 두 명에서 3백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6만 5천 명이나 들어가는데 어떤 해는 두 명밖에 퇴원하지 못한다고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끔찍하니까 더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여기까지였다. 그 불쌍한 여자가 생각할 수 있는 양방, 한방, 정신과 치료까지 모두 예상 비용이나 치료법을 설명해 놓고, 마지막으로 정신병원 강제수용 이야기로 걱정과 불안, 두려움을 최대한으로 극대화했다. 입원 환자 수와 퇴원 환자 수는 간단한 숫자의 왜곡이다. 한 해에 6만 5천 명이 들어갔다고 그 해에 반드시 6만 천 명이 퇴원해야 하는 건 아니다. 사장은 드디어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불안장애는 꾸준한 인지 개선으로 얼마든지 호전될 수 있는 질환입니다. 불안의 시작이 되는 걱정을 남에게 줘 버리면 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저희 걱정보험 주식회사와 계약 후 걱정을 저희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걱정은 저희가 합니다.” 

  다행히도 이 여자는 돈만 내는 것으로 사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나는 조용히 불쌍한 여자의 무릎 위에 계약서를 올려 주었다. 여자의 앙상한 다리는 계약서 한 장만으로도 다 덮일 정도로 빈약했다. 걱정보험 계약서는 여성의 무릎 위에서 파리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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