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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규 Aug 23. 2024

걱정보험 주식회사

#4

  내가 입사하고 마주한 첫 번째 고객은 40킬로도 나가지 않을 것 같은 여자였다. 팔뚝을 넘어 어깨에 이르는 상박까지 앙상했다. 딱 보기에도 사람들에게 잘 휘둘릴 것 같은 여성이었다.  사장은 이런 힘없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을 다루는 데 특화된 인간이었다.          

  뼈만 앙상한 여자 손님은 자기 손을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든지 탁자에 두 손을 손바닥이 보이는 채로 얹어 두었다. 탁자에 올려놓은 손바닥은 마치 개구리 두 마리가 새하얀 배를 까뒤집고 죽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파르르하게 떨리는 눈을 힘겹게 올려 뜨고는 자기가 우리를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원래는 이런 편도 아니었고 자잘하게 아픈 것도 그냥 병원 안 가고 넘길 정도였어요. 그런데 한번 심장이 크게 아프고 나서 건강에 대한 걱정이 너무 커졌어요. 지나간 일에 대한 생각은 전혀 안 하는데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요. 내가 다시 그렇게 아프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제일 많이 하고, 머리나 손목 같은 데가 조금만 아파도 이게 큰 병의 전조증상이면 어떡하지라고 혼자 불안해해요. 죽음에 대한 불안도 부쩍 커진 거 같아요. 심장 관련 질환을 겪은 후다 보니 더 그런 것도 있고요. 엄마는 제가 쓸데없는 걱정을 너무 많이 한대요.” 

  “건강에 관한 걱정이 너무 많아 힘드신 것 같군요.” 

  이건 또 뭐지? 사장은 갑자기 정신과 의사나 되는 듯이 상담자의 말을 반복하는 경청법을 시전했다. 그러면서 한 2분 정도 딴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또 이렇게 덧붙이는 게 아닌가. 나중에 배우게 된 사실이지만 말을 잠시 멈추는 것도 다 영업 테크닉이었다.   

  “죄송해요. 아까 잠깐 말씀하셨던 고객님의 걱정거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고객님의 걱정하는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보니, 고객님께서 느꼈을 걱정이나 불안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소리. 같이 오래 지내다 보니 다 알게 되었다. 사장은 이 고객이 걱정을 얘기할 때 딴생각을 한 게 분명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자장면 시켜 먹을지 김치찌개 시켜 먹을지 생각했던 게 뻔하다. 근데 고객님의 걱정거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고? 내가 요런 놈들을 많이 만나 봐서 아는데 상대방의 말에 관심이 없을 때 요놈들은 상대방의 눈을 보지 않는다. 눈은 거짓말을 못 한다. 나는 사장이 탁자 오른편에 놓여있는 배달 음식 메뉴를 보고 있었던 걸 다 봤다. 그런데 아, 이 순진한 여자는 공감과 지지받는 감정을 느꼈는지 자기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요것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점쟁이들이 이런 기술로 찾아온 사람들의 사생활에 대해 맞춘다고 한다.   

  “네. 저는 원래 걱정이 많은 성향도 아니었어요. 근데 심장이 크게 아프고 나서 건강에 대한 염려가 생긴 것 같아요.” 

  “원래 건강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사람도, 한번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면 걱정을 하게 됩니다. 당연한 거예요. 건강을 걱정해서 나쁠 것도 없고요. 고객님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객님의 입장이라면 건강에 대해 더 예민해지고 신경을 쓸 것 같아요.”라는 개뼈다귀 같은 소리를 하며 사장은 자신의 심장을 움켜잡고 미간을 찡그렸다. 사장의 얼굴에는 마치 자기가 심장병에 걸려서 당장이라도 병원에 달려갈 것 같은 격정이 떠올랐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그 힘없는 여자는 사장이 자기의 말을 감정으로 받아들여 이해했다고 생각하며 거의 울먹일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사장은 이 여성의 얼굴을 확인한 후에 마지막으로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다만, 이러한 걱정이 일상생활에 과도하게 영향을 미쳐 불편함을 준다면, 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객님께서도 답답한 마음에 최후의 수단으로 저희를 찾아와 주셨을 것 같아요.” 사장은 자기가 원하는 걸 바로 말하지 않고 마치 정신과 전문의 같은 조언을 늘어놓았다. 교활한 놈. 

  “앞으로 다가오지 않을 일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이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불필요한 생각이라 느끼고 계신 만큼, 초점을 미래에 두지 마시고 현재로 옮기시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현재, 지금 여기에서 고객님께서 집중해야 할 일들과 미래의 건강한 모습을 위해 현재 노력해야 할 부분에 집중하는 겁니다.” 

  현재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니, 이건 분명 보험을 사라는 이야기로 이어질 것 같았다.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거의 다 넘어가고 있었다. 

  “걱정이 많아 이런 실천적인 부분이 바로 실행되기 어려울 수 있으나 과한 걱정을 내려놓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하시길 권해 드리고 싶어요.” 

  작은 거라니 이것도 분명히 걱정보험 얘기다.  

  “어떤 게 있을까요?” 

  “걱정에 걱정을 하다 보면 부정적 감정에 휩싸일 수 있죠. 생각이나 행동의 전환을 하는 것 자체로 걱정이 과도하게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가벼운 신체적 활동부터 시작해서 현재 즐길 수 있는 취미활동으로 그 영역을 늘려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즉 지금 누리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거든요. 주위의 도움을 받아 친구나 가족과 즐거운 활동들을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주위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기꺼이 고객님과 함께해 주실 거라 생각해요.” 

  사장은 바로 보험을 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고객이 선택할 수 없는 다른 선택지부터 던졌다. 사람들은 나쁜 선택지와 덜 나쁜 선택지가 주어지면 항상 덜 나쁜 선택지를 선택한다. 인간은 선택지가 몇 가지만 주어지면 판 자체를 깨고 다른 더 좋은 방안을 생각하기 힘들다. 사장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제가 혼자 서울에 올라와서 일하거든요. 부모님이랑 친구들은 다 시골에 있어서요.” 이게 나한테도 써먹은 수법인데 상담을 시작하자마자 기본적인 인적 사항에 대한 질문이랍시고 고향이나 직장 위치 같은 걸 두루뭉술하게 묻는다. 보통의 사람들이 정확한 고향 주소나 직장 위치는 알려 주는 걸 꺼려도 고향이 광주라든가 지금 일하는 데가 강남이라든가 하는 일반적인 지역 얘기는 쉽게 한다. 사장은 사투리 억양이 있는 여성이 가족이나 친구와 떨어져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친구나 가족과 같이 취미활동을 하며 극복하라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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