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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는 코로나19 관련 걱정계약이 많았다. 코로나19 걸리면 다 물어 준다고? 이러다가 회사 망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사람들은 코로나19 걸릴까 봐 너무 걱정이 돼요,라고 계약을 맺고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자 안심하고 계약을 해지했다. 집에서 안 나왔으니 코로나19 안 걸린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보험을 해지하자마자 밖으로 나다니더니 줄줄이 코로나19에 걸렸다. 우리 회사는 매일매일 걱정보험금을 받으니까 사람들은 약간의 안도감만 가지면 바로 계약을 해지한다. 해지도 쉽다. 핸드폰 어플로 해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바로 해지다. 하루라도 입금이 안 들어오기만 해도 자동으로 계약 해지다. 지금까지 코로나19에 걸렸다고 보험금을 타러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미 계약을 해지했거나 자동이체를 취소한 사람들이었다. 보험계약을 해지한 후니까 당연히 보상금액도 없다.
보험 가입도 쉽다. 계약서 쓰고 그냥 은행 어플에서 우리 회사로 매일매일 1만 원의 돈을 자동이체하기만 하면 된다. 완전 사기 같지만 의외로 가입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상담을 하다가 점심을 못 먹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밤에 너무 걱정이 되어 찾아왔다는 사람들 때문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하지만 월급은 동종업계보다 두 배 넘게 꼬박꼬박 받고 있다. 발품 팔고 웃음 팔고 선물 주고 경조사까지 챙기는 보험왕들에 비하면 훨씬 편하다. 우리는 걱정하는 사람들이 자주 가는 인터넷 사이트에 광고를 올려놓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하죠?’라는 검색어만 넣어도 우리 회사 링크가 제일 먼저 튀어나온다. 못 믿겠으면 한번 해 봐라.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같지만 사람들이 찾아오면 이야기 좀 들어 주고 자동이체 계좌만 알려 주면 하루에 몇백씩 또박또박 박힌다. 사기 같지만 사기는 아니다. 우리 회사도 보험업법 제4조에 따른 허가를 받아 보험업을 경영하는 당당한 보험회사다. 보험업 제4조 3항 제3보험업의 보험 종목 라항에 의거해서 금융위원회의 허가까지 받았다고 한다. 역사가 깊은 동아생명, 제일화제, 태평양생명, 현대생명 같은 대기업 계열 보험회사들도 2000년대 들어 줄줄이 퇴출됐다는데 우리 회사는 잘도 버티고 있다. 아니지. 점점 매출이 올라서 분점을 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진짜 세상에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사실 내가 이 사기꾼 같은 사장에게 걸려들게 된 것도 망할 걱정 하나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걱정보험 주식회사에 발을 들이게 된 건 취업목적이 아니었다. 나도 손님으로 온 거였다. 당시 나는 걱정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한 달 정도 못 자니까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다. 일단 피부가 나빠져서 화장이 잘 안 먹었다. 내가 또 피부에는 관심이 많아 전문가인데 피부의 수분량이 급속하게 떨어지고 각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원래 탱글탱글했던 내 피부의 질감이라든가 윤기나 투명도, 탄력도까지 떨어졌다. 심지어 아직 20대 초반인데 주름까지 생기고 눈 밑의 밝기도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불면은 생활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먼저 하루 종일 병든 닭 모양 꾸벅꾸벅거렸다. 회사에서는 지금 닭 모이 쪼냐? 너는 하루 종일 일은 안 하고 컴퓨터에 인사만 하고 있냐?라고 부장이 매일 지랄이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일을 저질렀는데 사수가 가르쳐 주는 아주 쉬운 일 처리 방법도 따라 하기 힘들었고 사무실에서 중요한 서류를 어디 뒀는지 10분에 한 번씩 찾았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인턴보다도 일을 못 해 마치 월급을 훔쳐 가는 병신이 된 기분이었다. 일상생활에서도 병신 짓을 많이 했는데 영화 같은 건 다음 날로 예약하기 일쑤였다. 조조에는 영화 할인쿠폰 사용 불가라는 것을 몇 번이나 까먹고 같은 직원이랑 똑같은 문제로 싸워서 심신미약 진상 고객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또 감기나 가래, 인후염 같은 걸 달고 살았다. 잠이 보약이라는데 잠을 못 자게 되어 진짜 보약도 먹어 봤으나 돈만 썼지 면역력은 전혀 올라가지 않았다. 결정장애도 왔다. 자장면이냐 짬뽕이냐 하는 어려운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한식이냐 양식이냐도 정하기 힘들었다. 진짜 신기한 걸 발견했는데 잠을 장기간 못 자면 시야가 위아래로 좁아져서 앞에 있는 사람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신기하게도 가까이 접근해 무릎까지 꿇어야 겨우 앞 사람이 무슨 신발을 신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항상 탄수화물이 당겼다. 밤에 자야 한다, 자야 한다 하다가 못 자고 라면 한 그릇의 유혹에 넘어가기 일쑤였다. 또 탄수화물이 들어가면 뇌가 활성화되어 똑같은 걱정에 온 에너지를 집중해 잠을 더 못 잤다. 이런 패턴이 매일 반복되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까 눈의 초점이 흐려져서 핸드폰이 비스킷으로 보여 한 입 베어 물었다가 앞니가 깨졌으며 책상이 침대로, 서류들이 이불로 보이는 현상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엄마한테만 예민하게 굴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부장이건 사장이건 누구건 나를 건들기만 하면 바로 성난 멧돼지처럼 들이받았다. 급똥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려다가 사장님 방이나 회의를 하고 있는 회의실에 들어가 똥방귀를 뀐 적도 있다. 이를 본 부장이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지적해 부장이랑 사이가 극도로 나빠졌다. 한 달 정도 지나자 회사에서 말을 해야 할 때 발음이 잘 안 돼서 어버버거렸다. 인지력이 심하게 떨어져서 부장이랑 인턴이랑 헷갈리기도 했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 사무실 책상에서 뭘 해야 할지 옆 사람한테 물어봐야 할 지경이 되었다.
의심과 불안이 극대화되어 내 책상과 회의실, 화장실 등 모든 곳에 나만 감시하는 카메라가 있다는 확신이 들 무렵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후의 경제 상황이 걱정되어 밤에 라면을 하나 때리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서는 계약만료, 해고, 경영상 악화 세 가지 중 하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부장이 나를 괴롭혔다는 증거를 하나하나 모아서 부장 본인과 면담을 시도했다. 근데 부장 이놈이 내가 꺼내 놓은 증거를 하나하나 살피더니 마치 영화에서 나오듯 자네는 안 되겠다. 해고야,라고 외쳤다. 뭐가 안 되겠다는 거지, 이 새끼가. 네 정수리나 봐 임마, 네 탈모 방지가 안 되고 있다, 이 새끼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마무리는 잘하자 싶어서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부장님. 그동안 보살펴 주시고 감시, 아니 감사했습니다, 항상 잘 봐주셔서,라며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똥 싸다가 중간에 끊은 것처럼 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 찝찝하기는 했는데 뭐 결과적으로는 잘됐다. 해고를 이유로 실업급여도 타게 되었으니. 그렇게 찾아간 곳이 바로 걱정보험 주식회사였다. 걱정 고민 검색을 하면 무조건 우리 회사의 광고 배너부터 나온다. 걱정에 잠을 못 자면 6개월 실업급여 타면서도 제대로 못 놀 것 같고 6개월 끝나서 다른 회사에 가더라도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거 같았다. 그런데 실업급여를 1개월도 못 타 먹고 취업을 해야 했다. 망할 놈의 사장에게 내 걱정을 털어놓았다가 약점이 잡혀서.
그래도 내 걱정은 건강이나 죽음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