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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규 Aug 23. 2024

걱정보험 주식회사

#2

  두 번째 고객은 막 스무 살이 된 아리따운 여성의 걱정이었다. 이 여성은 머리를 빡빡 밀어도 예쁠 것 같았다. 진짜 미인이었다. 그 여성은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하늘거리며 들어왔다. 우리 사무실 소파에 앉기만 해도 금세 때가 탈 거 같았다. 내가 입사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청소하는 걸 본 적이 없는 사무실이었다. 사장도 안 하는데 내가 왜 해? 내 업무에 청소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 여자는 앉자마자 죽으면 지옥에 갈까 봐 너무 걱정된다며 30분 동안 계속 똑같은 얘기만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사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차에도 염주를 걸어 놓고 사무실 한구석에도 목탁을 진열해 놓은 사장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들이 튀어나왔다.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세상의 끝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가복음 13장 47절에서 5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믿습니까?” 

  성령의 말씀이었다. 사장은 누리끼리하고 거미줄이 눌어붙은 사무실 천장을 올려다보며 두 팔을 위로 뻗었다. 사장은 놀랍게도 마가복음 13장을 송두리째 외우고 있었다.  

  “네. 네. 성경에 쓰여 있는 말씀인데 물론 믿죠.” 20세 여성은 토끼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장을 올려다보았다.

  “사랑하는 자매여, 우리가 육신의 때를 위해, 미래의 영혼의 때를 위해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이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소유케 하셨으니 감사해야 합니다. 믿습니까?” 

  “네. 물론. 물론 믿어요.”

  “사랑하는 우리 자매는 천사들이 의인과 악인을 갈라낼 때, 의인으로 선택되셔야 합니다. 절대로, 악인이 가는 풀무불 같은 지옥에 가면, 절대로 안 됩니다.” 

  아까부터 계속 풀무불, 풀무불 하는데, 풀무불이 뭐지? 하고 나는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았다. 풀무불은 순우리말로 풀무질하여 피운 불이라고 했다. 풀무질? 아씨. 이건 또 뭐지. 나만 모르나? 여기서 나만 무식한가. 검색을 해 보니, 어럽쇼. 풀무질이라는 카페에 풀무질 수학 전문 학원이 있질 않나. 풀무질센터라는 화장품 가게에다가 제주 풀무질이라는 독립서점까지 있었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나만 빼고 모두 풀무질의 의미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풀무질은 풀무 즉, 불을 피울 때에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로 불붙이는 바람을 일으키는 일을 말한다고 한다. 아씨. 그냥 불 피운다고 하면 되지, 풀무질은 뭔 놈의 풀무질이야. 주의력 흩어지게. 

  “네. 저도 가기 싫어요. 풀무불이라니. 너무 끔찍해요.” 내가 폭풍 검색을 하는 사이 이제 그 여자 손님은 벌게진 얼굴로 벌서는 것과 같이 떨면서 두 손을 들고 있었다.  

  “하루 두 시간씩 기도와 말씀 생활 실천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예수 피의 생명으로 구원하신 은혜 감사하며, 영광스러운 의인이 되어 저 천국에서 영원히 구원주 예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영원히, 영원히 행복하기를 소망합니다!”

  “아. 주여.” 그 하얀 원피스의 여자 손님은 마치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표정이었다. 얼굴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채 사장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로고스 박스로 전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 잘 듣고, 큰 은혜 받아 기도와 회개로 성령 안에서 말씀 따라, 약속된 복을 영육 간에, 현재와 미래에 영원히 누리기를 기도합시다! 할렐루야!”     

  로고스 박스? 그 박스의 의미가 뭐건 간에 이제 안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 넘어왔기 때문이다. 

  “할, 할렐루야.”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를 꼭 하고, 외출과 모임을 삼가고, 3미터 안전거리 유지해서 코로나19로부터 교회 예배를 잘 지켜야 합니다. 가정과 이웃, 지역과 나라도 지켜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속히 종식되도록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사장은 그 와중에도 코로나19 방역을 철저히 지키며 모든 시설을 운영하라는 정부의 방침을 잊지 않았다. 사장이 우리 회사 사장인지 교회 목사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네! 네! 물론이지요.”

  “주여, 우리 형제자매 중에 병든 자는 고쳐 주시고, 생활고에 고통받는 자는 해결해 주시고, 불목으로 인해 불행한 자는 용서와 사랑으로 해결되게 하소서. 사업과 직장과 생업과 가사가 다 형통하게 하소서.”

  “오. 하느님!” 그 여자 손님은 번쩍 든 두 팔을 벌벌 떨며 손을 양옆으로 흔들고 있었다.  

  “저녁에도 기도와 말씀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그날의 영혼의 때를 위하여 말입니다. 사랑합니다. 자매여!”

  “오. 신령과 축복이 함께하기를.”이라는 말을 남기며, 그 여성은 매일 1회 1만 원 자동이체 버튼을 누르고 행복에 휩싸인 얼굴로 사무실을 나갔다. 그녀가 처음 들어왔을 때 보여 줬던 걱정에 찬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래도 한 달이면 30만 원인데 너무 간단하게 계약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근데 차분히 계산해 보면 교회에서 십일조 하는 금액이랑 보험비랑 거의 비슷하다. 게다가 우리 회사는 일주일에 한 번 위안을 주는 교회와는 달리 1일 1회의 위안을 제공한다. 그것도 단돈 1만 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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