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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규 Aug 23. 2024

걱정보험 주식회사

#1


  내가 다니는 회사는 걱정보험 주식회사, 처음 들어 보는 분들을 위해서 한마디로 멋지게 설명해 보자면 걱정이 있는 사람들이 안심을 살 수 있는 회사다. 만약에 걱정하던 것이 현실이 되어 조금이라도 손해가 발생하면, 우리 회사에서 금전적으로 전부 보상해 준다. 

  사업구조는 간단하다.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일정 금액을 보험비로 적립하여 둔다. 가입 회원 누구의 걱정이라도 현실이 되면 손해 전부를 보상해 주는 보험이다. 걱정이 현실이 안 되면? 그냥 사장이랑 나랑 둘이 다 가진다. 우리는 돈을 벌어서 좋고, 사람들은 걱정이 보상되어서 좋다. 우리 회사는 은행처럼 이 돈으로 투자를 하거나 채권을 사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스테이크 사 먹고 팔보채 시켜 먹고 써 버린다. 

  우리 회사는 한 번도 보상금을 지불해 본 적이 없다. 돈까지 내면서 걱정보험을 사는 사람들은 대개가 터무니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 쓸데없는 걱정들인데 놀랍게도 가장 많은 걱정이 유명인들에 대한 걱정이다. 삐티에스부터 쁠랙핑클, 찌드레곤, 깡다니엘 등등 걱정 안 해도 잘 먹고 잘사는 연예인들 걱정은 왜 그렇게 하는지. 삼송 같은 재벌기업들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도체 경기가 안 좋지 않냐. 공부 열심히 해서 월급 잘 받고 다니고 있는데 망하면 어떻게 하나. 다섯 살 때부터 일주일에 한 주씩 평생 삼송 주식을 사 모았는데 휴지 조각이 되면 어떻게 하나. 중국이 반도체 굴귄가 굴비인가를 하고 있다나 뭐라나. 뭐 그런 걱정이다. 얘네들 절대로 안 망하고 안 굶어 죽는다. 너네들 걱정부터 하라고 말해 주고 싶지만 참는다. 그리고 자기가 평생 모아 마련한 아파트가 무너지면, 대출받아 산 건물이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한민국에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은지 진짜 베스트 몇 개를 이제부터 소개해 보려고 한다. 저번 달에 우리 회사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 중 제일 쓸데없는 역대급 베스트 걱정거리 몇 개다. 


  먼저 경기도 부평에 사는 스물세 살 남성과의 상담 내용을 보자. 요놈은 머리가 너무 길어서 처음에 여자 고객인 줄 알았다. 

  “보시다시피 저는 여자 단발 정도로 머리 긴 남자인데요. 제 생각에도 제가 엄청 예쁘장하게 생겨서 잘 어울리더라고요. 여자로 오해도 많이 받고 제가 봐도 그냥 예쁜 여자 같아 보일 때가 많아요. 저도 제가 예쁘장하게 생긴 걸 잘 알아서 제 외모에 엄청 만족하고 있고요.” 

  미친놈. 모기 스프레이라도 뿌려서 확 쫓아 버리고 싶었으나 참았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내 외모에 만족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내 얼굴에서 예쁜 구석을 찾았지만 아직 못 찾았다고 한다. 

  나는 확 짜증이 나서 고객에게 대꾸했다.    

  “그런데요?”

  “친구들이나 부모님이랑 같이 있을 때는 괜찮아요. 그런데 혼자만 되면 너무 걱정이 돼요.”

  “네? 무슨 걱정이 된다는 거죠?”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일단 제 성 정체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그냥 제 외모에 관심이 많은 남자 청년입니다.”

  “성 정체성 얘기는 갑자기 왜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트랜스젠더도 아니고 그런 게 절대로 아닙니다.”

  “그건 알겠고요. 걱정이 도대체 뭔데 여기까지 오셨나요?” 

  “제 얼굴이 이렇게 예뻐서 남자가 번호를 따려고 덤비면 어쩌지, 자꾸 이런 걱정이 듭니다.” 

  이놈은 웃기게 남자다운 말투랍시고 계속 뭡니다, 뭡니다 했다. 

  “예?”

  “이 정도면 거리에서 남자들한테 먹힐 만한 예쁘장한 얼굴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자꾸 듭니다. 또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면 집 앞에 편의점도 혼자는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제 친구 중에 공대 나와서 개발자 하는 친구가 있는데 ‘예뻐도 번호 한 번도 안 따일 수도 있고 평범해도 따일 수도 있지. 그리고 네가 아무리 예뻐도 성별이 남잔데 남자가 왜 네 번호를 따냐!’라고 말해 줬지만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그 친구도 이렇게 말을 하면서 저를 은근히 쳐다보는 게 걔랑도 단둘이서 만나면 안 될 거 같습니다. 저 어떻게 하죠?”

  어휴. 미친놈. 참 걱정도 프리미어급으로 한다는 말이 목구멍을 넘어오려고 했다. 나는 욕을 삼키려고 노력하다가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말았다. 내 실수를 눈치챈 사장이 자기가 마무리하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제가 너무 걱정이 많나요? 진짜 너무 걱정이 돼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우리는 그 스물세 살의 머리 긴 남성을 시원한 냉커피 한 잔으로 진정시킨 후 보험 계약서를 작성했다. 남자인 사장과 마주 보고 앉더니 급격하게 불안해하기에 결국에는 내가 마무리했다. 

  “야, 너 머릿발이야. 자세히 보면 못생겼어.”라는 말이 위액과 함께 울컥하고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돈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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