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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규 Aug 23. 2024

걱정보험 주식회사

#6

  다음에 찾아온 고객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기업 삼송을 다니는 회사원이었다. 우리가 이력이나 직장을 두루뭉술하게 물었는데 삼송이라고 바로 대답하는 걸 보니 1등 기업인 삼송이 분명했다. 

  이 남자는 얼굴에 병, 몸에는 약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내가 외모 평가는 진짜 안 하는데 약한 남자는 질색이다. 진짜 파리한 얼굴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 남자는 드물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파리하다는 말은 몸이 마르고 낯빛이나 살색에 핏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라고 나오는데 이 남자가 딱 그랬다. 얼굴은 물론 몸 전체가 새하얘서 도대체 피가 돌고는 있는지, 아니 몸속에 피가 있기라도 한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우리도 일단 보험회사라 가입자의 병력이나 몸 상태 같은 부분을 기입하게 되어 있다. 병력란에 특별한 병은 없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항이 내 안구를 사로잡았다. 카이스트. 과학 인재 양성과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는 과학기술 연구 수행을 위해 설립된 대한민국의 국립 특수 대학교. 대한민국에서 수학 과학 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천재들만 모아 놨다는 그 전설의 집단이었다. 

  “예를 들어서 공식 홈페이지에서 보낸 인증 메일도 공식 홈페이지에서 보낸 걸 알고 있지만 계속 클릭 잘못했다가 해킹당하면 어떡하지? 이런 정말 쓸데없는 걱정을 합니다.”

  “예? 그런 거 막 코딩하고 그래서 조작하고 하실 수 있지 않나요?” 내가 물었다. 

  “예?”

  “카이스트 나오신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그건 못하죠. 그것만이 아니에요. 건강 걱정부터 자다가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들. 택배 오면 물건에 병균 있을까 봐 걱정되고요.” 

  “에이, 카이스트 나오신 분이 그런 거 걱정하신다고요?”

  “그래서 그게 문제에요!” 남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탁자에 손바닥을 내리쳤다.

  “아이고, 깜짝이야.”

  “일단 제가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요.”

  “예? 뭘 몰라요?”

  “같은 카이스트 애들끼리 몰려다닐 때는 몰랐는데요. 졸업해서 사회로 나오니까 사람들이 다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네? 어떻게요?”

  “일단 회사나 뭐 그런 데서 어느 학교 나오셨는데요?라고 물어볼 때 카이스트라고 했다가는 진짜 큰일 나거든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 같은 지잡대 출신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내가 만약에 카이스트를 나왔으면 죽을 때까지 대학교 잠바를 입고 다닐 거다. 뒤에 커다랗게 하얀색 실로 자수를 뜬 카이스트 글자를 매일매일 자기 전에 손세탁해서 하얗게 광내고 다닐 텐데.

  “온갖 편견이 다 나오고요.”

  “편견이요?”

  “네. 카이스튼데 이것도 못 하냐? 이런 말만 들으면 다행이지. 심지어 학교 다닐 때 찐따 아니었냐? 사회성 떨어지지? 친구 없지? 등등 말도 못 해요.”

  “아. 그렇구나.” 

  “그래서 어디 가서든, 미팅 자리에 가서도 학교 얘기가 나오면 그냥 대전에 있는 지방대 나왔어요,라고 해요. 그리고 아, 저는 공부는 그냥 열심히는 했어요,라고 덧붙인답니다.”

  “진짜요?”

  “말도 못 해요. 친구들이나 친척들이나 자잘한 돈 계산 같은 거는 계산기 안 쓰고 다 저한테 물어보는데요. 제가 10원이라도 틀리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뭐라고 하는데요?”

  “너 카이스트 나왔잖아.”

  “와.”

  “심지어 화장실에 불이 안 켜질 때, 컴퓨터 부팅 안 될 때도 저한테 묻는데요. 제가 못 고친다고 하면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혹시 카이스트 나왔는데 그것도 못 하냐고?”

  “맞아요. 너 카이스트 나왔잖아. 이것도 못 해?  

  “진짜요?”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저는 장난도 못 쳐요.”

  “왜요?”

  “아무도 안 웃어 주거든요.”

  “왜요?”

  “카이스트 나온 사람이 한 말이니 아무리 개소리 같아도 분명히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고 다들 사실로 받아들이거든요.” 

  “진짜요?” 

  “네. 농담을 해도, 거짓말을 해도 다들 아, 그렇구나 하는 반응이에요.”

  “와.” 

  “그러니 제가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겠어요?”

  그때 책상 저 너머에서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굴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깊은 울림을 가진 소리였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사장은 끼어들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곧 사장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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