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 나의 요새

by 미니수니

눈물 날 만큼 행복했다가 눈물 날 만큼 괴로워하며 보내줬다 반복하기를 여러 번. 두 번 다시는 특별한 관계를 만들지 않기로 다짐했던 적이 있다. 언젠가 모두 지워내야만 하는 관계라면 앞으로는 만나지도, 만들지도 않기로 다짐하며, 그 누구에게도 쉬이 마음을 주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마음을 동여맸던 적이 있다. 그렇게만 하면 나는 더 단단해질 수 있으리라 장담했던 것 같다.

평소에 타인에게 줬던 마음을 반으로, 거기에서 또 반으로, 또다시 반으로 잘린 마음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딘가 구석 한편에 쌓이고 쌓이게 되었다. 그렇게 쌓인 마음들은 나를 뛰어넘어 내 키보다도 높이 쌓이게 되었다. 드디어 나만을 위한 요새가 완성된 줄 알았다. 나는 그 요새 뒤에 숨어 이제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요새 위로 작게 자른 마음들을 던져 올렸다.


나의 요새가 너무 커져 버린 탓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작은 탓일까. 아무렇게나 던져졌던 마음들이 하나둘 내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후회, 그다음에는 약간의 불편함, 그다음에는 조금 무거워진 후회. 타인에게 주지 않으려 했던 텅 빈 마음들은 나에게로 다시 굴러 떨어져 와 나의 마음으로 변하고 있었다.


내 머리 위까지 커져 버린 나의 요새는 더 이상 요새가 아닌 나의 후회, 절망, 실망감, 자책, 미안함 등으로 어우러져 괴상한 모양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저 요새 뒤에 작게 웅크리고 숨어있는 것밖에 하지 못했던 나는 신발이 젖어 들어가는 것을 보며, 부디 나의 티셔츠까지는 적시지 말아 달라고 두 눈을 감고 기도했다.


하지만, 나의 기도에 간절함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타인의 진심을 외면한 벌을 이제야 받는 걸까. 이것도 아니면 모든 관계에 지쳐버린 나를 위한 안식이 마련되고 있는 것일까. 나의 요새는 전부 엉망으로 녹아내려 티셔츠를 적시고 목 끝까지 차올라 나를 헐떡이게 했다.


나는 그렇게 녹아버린 감정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기에, 목 끝까지 차오르는 나의 요새 안에서 하염없이 떠다니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하늘만 간신히 보일 정도로 떠다닐 기력마저 떨어지게 되자, 지면은커녕 작은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심연으로 끝없이 내려가 내게 내려질 안식의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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