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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Apr 08. 2023

슬프게도 봄과 함께 간다.

우크라이나로 가는 동생네


이틀째 비가 내렸다. 거리를 화사한 물결로 빛내던 벚꽃의 향연이 지고 벚꽃비도 맞지 못한 채 아쉬운 봄이 간다. 밤사이 내리던 봄비로 인해 듬뿍 수분을 머금은 나무가 수액을 빨아올려 맘껏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다. 이 계절 아름다움이란 꽃이 피는 찬란함만이 아니다. 햇살이 뜨거움을 더해가고 푸르름을 머금기 전 온몸을 다해 여린 연두 빛깔의 자태를 마치 어린 속살인 양 드러내 보이는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잠깐의 시기를 사랑한다. 새순이 주는 싱그러움과 생명력에 놀라고 아기의 성장을 보는 듯 잠깐의 파릇함이 있어서다.


이른 날씨가 주는 화창함에 취해 잠깐의 바람과 시샘도 봄날을 막지는 못했으리라. 이런 아름다운 계절을 뒤로하고 동생네가 다시 우크라이나로 들어간다. 동생네는 우크라이나 국립대 교수로 부부가 같이 사역을 하고 있다. 갑자기 전쟁의 서막이 드리울 때 자국인 대피명령으로 남아있을 수 없어 어렵게 귀국했었다. 얼마나 긴장을 하고 출국이 어려웠는지 언론 기사를 보면 태극기를 자동차 앞에 붙이고서 국경을 넘어갔다고 한다. 걱정을 할까 봐 별말하지 않았지만 세 식구가 사선을 넘나드는 긴박한 긴장의 시기였을 테니 들어와서도 한동안 내리 잠만 자고 자가격리 기간이라 집 밖을 나올 수도 없었다. 청소년인 조카는 친구들을 놓고 와야 하는 부담감과 전시상황으로 트라우마가 생기기까지 했다.


작년 2월에 입국했으니 전쟁에 관해 이런저런 기사를 봤을 법한 사람들도 교회를 놓고 나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십여 년이 넘게  젊음을 바치고 먼 이국에서 선교의 씨앗을 뿌렸으니 겨우 러시아 말을 할 정도의 수준이었으나 우크라이나 어는 또 다른 도전이었을 테고 사는 게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선교사가 넉넉한 생활을 하며 자국민과 같지 않은 길을 걸을까. 현지에 녹여들 듯 스미는 삶을 살기 위해 수많은 땀과 눈물 흘렸을 것을. 전쟁이라는 변수가 생기지 않았다면 몇 년에 한 번 가끔씩 들어와 잠깐의 만남이 있었을 테지만 동생네가 결혼 후 처음으로 오랫동안 한국에서 같은 하늘 아래 숨 쉴 수 있었다. 시간에 쫓기며 잠시 마주할 수밖에 없던 세월이었는데 이제야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시간이 허락되곤 했다.


조카는 그동안 졸업을 하고 한국의 대학에 입학을 했다. 또래들보다 어린 신입생으로 학교에 적응하려는 때 가족과 먼 이별을 해야 한다. 그동안 부모와 함께 지내다 기숙사에 들어갔다. 전쟁이 종식된 것도 아니고 아직 대학의 학생들이 모두 돌아온 것도 아닌 시기에 외교부에서 비자가 나왔다. 일 년여 만에 받아 든 비자에 한달음에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짐을 정리하고 있다. 겨우 일 개월짜리 비자건만 현지에 가서 연장 신정을 하려 한단다. 가는 동안 우크라이나의 화상 수업을 미리 당겨서 마치는 준비까지 해야 하니 여러모로 힘겨운 시간일 것이다. 여태껏 관심 없던 사람들이 이제야 선교지로 간다고 하니 연락을 해온다.


며칠 뒤면 이제는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길을 가고 있다.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가는 것일까. 자기의 삶과 젊음을 모두 바쳐 이룩한 씨앗이 자라고 있다. 먼 타국 서 한국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시기에 가서 문화강국으로 드높아지고 있는 때에 이제는 한국을 알고자 각 대학에 한국어과가 개설되고 있다. 이런 그들에게 한국어와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는 동생네. 어디 꽃길만 걷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만은 이 화려한 아름다운 시기에 그들을 보내려 하니 내 마음이 아프다. 혹 전쟁이 내일 멈춘다는 소식이라도 물고 온다면 달라질까? 재건을 위해 나간다는 그 말속엔 얼마나 많은 희생과 돌봄, 아픔이 스며 있을지......


사람의 뒷모습엔 여러 모습이 있다. 멋짐과 자태, 품위 속에 드러나는 긴 세월에 얻어지는 주름살 같은 훈장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만들어지는 것도 거저 얻어지는 것도 아닌 생의 발자취 일 것이다. 바람에 스러져 버린 벚꽃 같은 찬란한 시간이 지나고 있다. 가는 길마다 뿌려주지는 못할지언정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는 소월의 시어처럼 그렇게 보내 주어야겠다. 봄은 슬프게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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