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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Jun 15. 2023

자기 자리에서 피어난 들풀들


요즘 센터에서 청년사업을 하고 있다. 청년들의 취업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장기와 단기 등으로 나누어 점심을 만들어 먹는 수업이다. 그중 장단기 골고루 일정에 맞춰 주 2~3회의 수업을 맡게 되었다. 오늘 메뉴는 수제버거와 감자튀김이다. 점심을 대신하니 되도록 간편하고 양이 충분하면 다. 패티만 만들면 별 할 게 없기도 하고 좋은 재료를 맘껏 사용할 수 있으니 부담이 없다. 수제버거에 콜라가 없다며 담당자가 콜라를 사러 갔다 오면서 오렌지를 인당 1개씩 사 왔다. 덕분에 충분했던 메뉴에 과일까지 곁들이니 풍성하게 되었다.


한우와 돼지고기로 패티를 만들어 굽고 통 로메인과 에멘탈 치즈, 토마토, 양파와 피클을 곁들이고 드레싱을 만들어 뿌렸다. 더구나 날씨가 더워서 감자튀김을 오븐에 구웠다. 한꺼번에 구워 케첩과 함께 주니 간단할 수밖에. 모두들 만족하면서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버거킹보다 맛있다는데 재료가 다르니 어찌 같을까. 수제버거는 전문점에선 비싼 가격에 판매를 하니 가격만큼 값어치 있는 메뉴였다. 과일 디저트에 남은 감자튀김은 간식으로 먹으라고 싸주었더니 입이 함박만 해진다.


기수마다 다른 특징을 가진다. 어떤 반은 말 한마디 없이 관심 없는 듯 수업을 듣지만 이내 피드백을 받아보면 표현을 못 했을 뿐 만족했다고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가 다. 이 반은 남성이 6명이나 되어 각 조에 골고루 포진해 있고 더구나 젊은 여자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조리를 잘하는 경우였다. 이분들이 정리 정돈도 끝까지 남아서 하고 행주질까지 깨끗이 하니 조원들이 혜택을 보곤 다. 사람들은 여러 형태의 모습과 성향을 갖고 있다. 내가 본 많은 이들은 때로는 분위기에,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자기의 고유한 성향은 잊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게 보였다.


얼굴을 보면 자기의 현재 상태가 잘 드러난다. 지금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곧 아름답게 피어날 청춘들 아니던가. 사람은 자기의 자리에서 조용히 역할을 해나가면서 자기 몫의 꽃을 피워내야 한다.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삶일 것이다.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사람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역할이 주어질 테지만 충실하게 묵묵히 걸어가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 게 삶 아니던가.


오랜만에 조리 수업을 하면서 나 또한 성장한다. 메뉴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쉽고 간단하게 시간을 절약할까 늘 고민한다. 그러면서 음식의 맛 또한 좋아야 하니 여러 번 메뉴를 점검하게 된다. 때론 연습도 해가면서 말이다. 한동안 새로운 메뉴를 연습하질 않았는데 그런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가끔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막 샘솟을 때가 있다. 그럴 때야말로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고 수업에 정말 도움 되는 경우가 많다. 매일같이 새로운 것들이 밀물처럼 떠오르니 날마다 수업을 하면서 재미를 더해간다.


난 빵 수업만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조리 수업도 나를 흥분시킨다. 사실 요즘 센터엔 제과제빵 수업만 잘되고 조리 수업은 거의 모집 자체가 안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조리 선생님 수업이 줄어서 울상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해 먹는 음식에 대한 수요도 낮아지고 외식과 배달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탓이겠다. 그런 때에 제과제빵 수업이 아닌 조리 수업으로 수강생과 만난다. 어쩌면 이게 기회일 테니 얼마나 많은 수업 중 내게 온 일이며 행운일까.


여러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내게 오는 것이라 한다. 때로 사고를 당해 가슴 아픈 경우도 있었고 기쁜 창업의 기회와 취업 소식도 들려온다. 창업 후 가끔 보충을 위해 수업을 듣는 분들도 있으니 그만큼 내 영역이 넓어졌다는 이유겠지. 누군가 '선생님은 언제까지 할 수 있어요?'하고 묻기도 했다. 웃으며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아마도 센터 선생님 경우를 봐도 내가 운영하는 반이 잘 되고 있다면 앞으로 한참을 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지금의 일을 즐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자기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감사한 일이다. 우리 반 오랜 수강생 중 나이 많은 분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일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가 부럽다고 했다. 다른 이의 기준이 아닌 자기 자리에서 피어나는 것은 이름 모를 들풀처럼 자기의 몫을 다하는 게 아닐까. 난 그런 들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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