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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Jul 08. 2023

초복엔 역시 닭 한 마리


요즘 진행하는 수업은 '청년도전지원사업'이다. 취업활동이 없는 청년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구직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그 일환으로 주 1회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 자식들 또래라 그들의 니즈가 뭔지, 뭘 하고 싶은지 파악해 원 팬이나 원 플레이트로 할 수 있는 레시피로 구성했다. 주로 한 끼를 해결하는 데 심플하고 좋아하는 메뉴로 재료비가 넉넉해 가끔 음료와 과일을 구입하는 사치를 부리곤 한다.


초복이 다가와 '닭 한 마리' 보양식을 만들 순서였다. 장마 기간이지만 높은 기온에 바깥 체험을 하고 와선 얼마나 더울지 걱정이 앞섰다. 미리 큰 냄비에 물을 끓여 놓고 시작했다. 먼저 물 3L에 대파, 양파, 통후추, 마늘, 생강을 넣어 우리고 우유에 담가 누린내 제거한 볶음용 닭을 깨끗이 씻었다. 푹 물러진 야채를 건지고 육수를 덜어내어 손질한 닭을 넣고 끓였다. 그동안 국물에 넣을 감자, 대파, 호박, 버섯을 썰고 샐러드용 부추, 양파, 양배추를 채 썰었다. 고춧가루, 간장, 식초, 설탕, 연겨자로 소스를 만들어 숙성시키고 고기가 익으면 야채와 떡을 넣었다. 소금 후추로 간하고 감자가 익으면 건져 먹으면 완성이다.


닭과 야채, 떡을 먹고선 전분을 털어 살짝 씻은 칼국수 면을 넣어 익히면 되니 이때 남은 육수를 부어 익히면 된다. 복날 닭 요리에 빠지면 안 될게 수박이라 조별로 분할해 주었다. 조리실의 열기 속에 닭을 삶고 칼국수를 끓여 먹느라 시간이 걸렸지만 복날을 맞는 준비론 부족함이 없었다.


조리 수업은 먼저 시연을 하고 레시피대로 따라 하면 된다. 조별로 남녀가 같이 섞여있고 나이대도 비슷해서 시간이 지나면 서로 친밀감이 생기곤 한다. 한 친구는 주어진 야채를 씻지도 않고 썰기부터 했다. 마늘은 꼭지를 따야 하는데 그런 것조차 알지 못했다. 주어진 야채가 씻어진 게 아니냐고 할 정도였으니 친구들의 실력이야 말해 무엇할까. 그래서 마늘은 씻어 꼭지를 따고 저미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생강은 칼로 살살 긁어 껍질을 까는 것부터 보여주었다. 살면서 처음 칼질을 해봤는지 생강 껍질을 몸 밖으로 칼을 날려가면서 껍데기를 까고 있었다.


파는 5cm 길이로 썰거나 얇게 쫑쫑 썰어 국에 넣는 모습을 보였는데 한 친구는 1cm 두께로 얇게(?) 썰고 있었다. 옆에 가서 보면 정말 재밌는 광경에 혼자 웃을 때가 많다. 지적 질은 않지만 이미 다 한 상태여서 무슨 말을 해도 고칠 수 없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저 정도의 센스라면 관심조차 없었다는 얘기일 텐데 평소에 파를 먹지 않아서였을까?


여럿이 분업을 해서 4~5가지 정도의 순서만 알면 할 수 있는데도 그마저도 헷갈려한다. 한 사람은 재료를 씻고, 누군가는 소스를 계량하고, 나머지는 야채를 써는 등 분업을 한다. 각자 맡은 바 역할만 할 줄 알지 더 이상 진전이 없다. 누구는 5가지 재료를 계량하느라 십여 분을 다 사용한다. 더구나 음식은 습관대로 하는 편이라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은 그야말로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하기도 한다.


그릇이며 수저는 매일같이 소독을 하고 살균기로 마무리를 한다. 지금 센터엔 업소용 식기세척기가 있어서 75초면 간단하게 식기를 씻을 수 있다. 물론 뽀송하게 말리는 건 안되지만 뜨거운 물로 세척이 되는 거라 그냥 두면 깨끗이 물기가 말라있다. 칼이며 각종 도구는 살균소독기로, 행주는 건조기로 말리고 있다.


처음 오는 친구나 몇 번 수업을 들은 친구들 하나같이 야채는 씻을 줄도 모르면서 수저와 그릇은 꼭 씻어서 사용한다. 나만 그걸 알아챈 게 아니었다. 담당자도 그런 말을 해서 둘이 한참을 웃었다. 어쩜 하나같이 그렇게들 똑같냐면서. 한 번은 남자 수강생에게 그릇은 깨끗이 씻어 말렸으니 안 씻어도 된다고 했는데도 그래도 찝찝하다는 말을 했다. 본인들의 취향이니 말릴 순 없겠지만 젖은 그릇보단 마른 그릇이 더 사용하기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 자식도 별반 다르지 않을까 싶다. 마늘 손질이나 생강 껍질을 깔 줄 아는지, 감자칼 사용법과 파를 얇게 저밀 줄 아는지 궁금해졌다. 주말에 아이들이 오면 모른척하고 물어보던가 해보라고 해야겠다. 설마 보고 얻어먹은 게 있어서 좀 낫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제대로 밥 한번 안 해 먹는 세대에게 뭘 바라는 건 무리지 않을까. 이번 수업을 통해 젊은 20대 중후반부터 30대까지의 청년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살면서 얼마나 수많은 것들을 배워나가야 하는가였다.


먹거리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재료 손질하는 것조차 서툰 손길을 보면서 우린 정작 가르쳐야 할게 무언지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부디 이제 시작도 하지 않은 출발점에서 더 나아가기 위해선 어설픈 몸짓이라도 힘찬 날갯짓을 해야만 날아갈 수 있지 않나. 그들의 더 큰 도약을 바라는 마음에 오늘도 혼자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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