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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Jul 22. 2023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열정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2012


아니 에르노는 프랑스 여류 작가로 작년(2022)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올 초 영화로 개봉되어 더욱 유명해진 책이다.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면 소설로 쓰지 않았다는 작가는 철저하게 개인적이나 객관화된 시각으로 기술한다. 1991년 발매 당시 연하의 외국인 남자친구와의 사랑을 다룬 내용으로 문단에 충격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불륜에 관한 소설치곤 지나치게 외설적이지 않았으나 감정의 기술과 담담하게 일상을 보내면서 외로움과 그리움을 견디며 스스로의 시간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상대가 외국인 젊은 유부남이라는데 문제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만을 기다리며 그와의 시간을 떠올리고 준비하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했다.


자아의 글쓰기를 통해서 발전하는 글쓰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자서전적인 이야기로 시작을 했지만 지극히 객관화된 시각을 고수했다. 그의 입장에서 기술해 내려간 이야기나 글 속에 빠져 있을 때조차 사랑의 감정은 현실과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그녀는 33세나 젊은 작가와 새로운 사랑에 빠졌었고 그 남자가 쓴 '포옹'이라는 글은 남자판 '단순한 열정'이라 한다.


수많은 삶의 골목마다 겪어나간 이야기 속에 한순간을 끄집어내어 담담하게 이야기로 진행시키기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때의 기억과 느낌, 감정을 오롯이 소환하고 한 수저 포인트로 간을 더하는 일이야말로 작가의 역량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면서 그녀를 더 많이 이해하고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남았다. 어릴 때 생각하는 사치는 모피코트나 긴 드레스, 바닷가 저택이었지만 나중에는 지성적인 삶이 사치라 여겼다 한다. 나이 든 지금에 와서야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라 여겨진다는 내용이었다.


사치라는 감정은 온전한 사랑을 받으며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싼 가방과 고급 옷을 걸치고 좋은 집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사랑을 서로 교감하고 나누며 가질 수 있는 지극히 부러울 만한 내용일 것이다. 정으로 사는 한국인의 정서상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없는 것은 아니나 젊지 않은 여자의 심리상태와 더불어 감정과 일상을 적절하게 소회 하며 개인적인 감정을 적절히 믹스해 놨다고 느꼈다.


어쩌면 십 대의 출렁이는 가슴을 안고 느꼈던 떨리는 감정과는 다른 느낌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실되게 현실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남자는 결혼 상대자론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 있다. 비교적 연애관이 자유롭고 다른 나라에 비해 자기중심적이라 서로 성에 대해 열린 결말을 가지고 있어서라 한다. 의외로 독일인이 가장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단다.


어느 나라 어느 곳에 있던지 감정 소모와 사용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한국판에 비견하자면 오래전 뜨거웠던 드라마 '애인' 정도라고 할까. 세상적인 잣대가 아니라 순간에 느끼는 감정과 그로 인해 세상과 연결해 주었다고 여기는 작가의 말로써 세상에 거저 생기는 일은 없다 생각되었다. 세심하지만 흔들리는 마음과 자세하지만 상상할 여지가 많은 담담한 문장이 어쩌면 가장 대중적이라 할 수도 있겠다.


여류작가인 줄 몰랐지만 문장의 섬세함과 감정의 흐름이 자유로워 마치 속삭이는 듯 느껴져 글을 읽는 내내 여성작가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자전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로 자기의 체험과 기억이 어떤 글이라도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작은 실타래의 시작 또한 처음이 있다는 생각에 글을 풀어내는 유려한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람이 무언가에 빠지면 오로지 한 가지만 보인다고 하니 어쩌면 그런 시각을 전제로 하는 일상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드러냄으로써 삶을 흐름을 알려주는 게 아닐까. 우리의 존재는 이런 현실에 맞게 자라고 이어져 나가는 시류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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