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와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보통은 명절에 지내야 할 제사가 있고 건사할 식구가 있으니 직업이 있다 해도 빼먹을 수 없어 고단한 시절을 보내야 한다. 앞반 선생님인 친구는 아버지가 아프셔서 생사를 오간다 한다. 그동안 남동생 네가 돌보며 일상생활이며 정기검진으로 병원을 모시고 다녔는데 갑자기 암이 발견되어 집에 우환이 깃들었다. 검사와 수술로 여의치 않아 계속 재수술하는 상황이라 가족끼리 마지막 준비 말까지 돌고 있다.
선생님은 시댁 제사 준비도 해야 하고 일도 하니 겨를이 없고 마음이 심란하다. 찬바람 불고 명절이 다가오니 어르신의 비보를 듣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한편 나도 시어머니가 아들 고2 명절 연휴에 돌아가셨다. 급히 식구들이 부산에 내려가 장례를 치르느라 부산한데 아들은 상주 노릇까지 해야 했다. 명절이라 사람 구하기 쉽지 않아 장례 진행이 되지 않았고 발인이 추석이라 어쩔 수 없이 5일장을 치러야 했다. 오랜만에 맞는 긴 명절 기간 동안 장례식장에서 보내야 했다. 더구나 서울이 주거지인 우리만 사람이 오가기 어려웠으니 마지막 발인도 선산인 함창으로 향해야 했다.
그때 아들은 5일 장례를 치르곤 선 다음날 학교를 갔다. 내가 하루 정도 쉬어도 된다고 했지만 그냥 가겠다고 해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저녁때 교감선생님 전화를 받았는데 휴일을 지내고 와선 독서실에서 꾸벅꾸벅 졸더라는 말을 했다. 지도 편달을 바란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시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명절 기간 내내 상주가 되어 하루도 쉬지 못해서 그렇다고 했다. 선생님은 뻘쭘했는지 별말이 없으셨다. 그렇게 졸았더라도 내게 전화를 해선 일러줄 일도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에 부고를 알리고 처리하면 될 일이었는데 새삼 그때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찬바람이 불면 여기저기 어르신의 부고가 들려온다. 엄마도 이럴 때 뇌동맥이 터져 나와 가족을 놀라게 한 적 있다. 선생님도 그럴 것이다. 가족 중에 아픈 이가 있으면 얼마나 심란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제 담도암 2기라니 연세도 있고 여기저기 몸과 뇌 기능이 떨어져 견뎌내실지 걱정할 것이다. 꼭 어르신들이 명절 전후에 돌아가신다는 말에 겪어보니 식구들 고생이라 별일 없기를 바라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 친구는 가족이 모두 모이고 친척 방문이 이어지니 명절 치를 생각에 준비 좀 해야 한다고 한다. 모두 사는 게 비슷하다. 장자도 아니지만 외며느리인 나는 18년간 명절을 치렀다. 이제 그럴 일조차 없지만 누구나 힘든 시기를 겪어나가야 한다. 한때 몸서리치도록 싫어했던 모든 일들도 세월 앞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묻히기도 하니 참 기이하다. 사람의 기억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익숙해지고 파묻히는 것만 같으니 어쩌면 이게 삶의 지혜인지 아님 성숙인지 모를 일이다.
명절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엄마들이 보내야 할 음식 준비며 차례, 손님 치를 일 등 설거지의 지옥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먹고 치우고 다시 차리고를 반복하는 중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 이 땅의 모든 엄마와 며느리에게 고하고 싶다. 그런 날들이 지나면 그래도 좀 나은 시간이 올 거라며 위안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