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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Oct 15. 2023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주말 아침 뒹굴뒹굴하다 잠깐 필요한 걸 사러 나갔다. 비가 추적 내리는 공원에서 바라본 초록 잎 사이 내리는 비는 매력적이다. 촉촉하고 상쾌한 것이 얼마 전까지 습기 차고 더운 기온으로 눅눅했는데 지금은 시원하고 기분을 맑게 해 준다. 푸른 잎들 사이로 비를 바라보니 기분 좋아진다. 습기도 기온에 따라 사람을 기분 좋게 나아지게 한다. 낭랑한 소리로 자연에 울림을 주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사부작 정리를 했다. 간단하게 깍두기를 담고 싱크대 밑 내용을 모두 꺼내 냄비와 그릇으로 채우고 나머지 식료품은 베란다로 옮겼다. 안쪽에 있어서 미처 보지 못해 날짜를 놓치기 일쑤고 찾기도 어려워서 그릇은 그릇대로 한자리에 모았다. 그릇장의 그릇은 필요 없는 것은 모두 빼서 같은 그릇끼리 넣었다. 밀폐용기 뚜껑이 제자리에 있는 게 없어 짝을 찾아 베란다 장에 넣어놓고 오래된 선반 박스는 모두 버리고 교체했다. 바닥에 있던 김치통을 모두 닦아 뚜껑 덮어 한 곳에 모아두었더니 빈 김치통의 개수가 여러 개였다. 유리는 유리끼리, 빨간 김치통은 김치통끼리 모았더니 정리한 효과가 있다.


정리하다 남겨놓은 바닥 물건을 모두 갖다 버렸다. 쓰레기는 치우고 널브러진 것은 모두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봉투는 봉투끼리, 밀폐용기는 용기끼리, 식료품은 같은 종류끼리 모았다. 한꺼번에 보기만 해도 찾을 수 있게 정리하고 보니 뿌듯하다. 이제껏 혼자서 정리를 한다고 했지만 오늘이 제일 만족스럽다. 주말 혼자서 그 많은 것을 정리하다 보니 날이 저물었다.


저녁까지 설거지와 정리를 하니 비로소 태가 나는 듯했다. 우리 집에 이렇게 많은 김치통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최근 냉장고 속을 많이 비워서 빈자리가 남아돌아 여유 있어 그럴 것이다. 오래된 것은 버리고 정리하는 것이 맞다. 그동안 무얼 하느라 내가 사용하는 것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살았을까. 심지어 다 쓴 프린터 토너까지 나왔는데 나중에 되팔 생각이었나 보다. 더구나 그 프린터는 진작에 버렸는데.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버리고 정리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최근 살아가는데 얼마나 물건이 필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비우고 떠나보내야 내 삶이 정리되고 간단하게 일목요연해질 수 있을까.


산다는 건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 하나 다시 보면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또 있는 대로 더 많은 것을 요하고 사게 된다. 없으면 돌려 쓰고 빨아 쓰고 이것저것 방법을 달리해 사용할 일을 너무나 쉽게 새것과 좋은 것을 원하고 사게 된다. 정리 정돈 또한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인 줄 알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정리하고 없으면 새로 사면 되는 줄 알았다. 최근 냉장고가 고장 나 냉동실 식품을 모두 버린 일이 있다. 그때 알았다. 쌓아놓기만 하면 결국엔 쓰지도 않고 버리게 된다는 것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결국엔 흘러넘치듯 터질 때가 있으니 그게 어찌 물건만 그럴 것인가. 자기 마음 상태에 따라 소비습관이 결정된다고 한다. 난 물건을 많이 사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러나 들여다보니 결국엔 식품에 욕심이 많았다. 장아찌를 양껏 만들어 쌓아 놓고 쌀 때 구매하는 걸 즐겨했다. 욕심껏 만들어 놓고 준비하는 걸 당연하다 여겼다. 그러니 정리하지 못하는 베란다며 다 먹지 못하는 식재료가 널린 집이 되었다. 이제야 반성한다. 여태껏 내 마음 상태조차 몰랐다는 것을.


오래된 베란다 식품과 싱크대 밑과 위의 그릇장을 정리했으니 이제야 시작이다. 조금씩 지금의 생활 습관대로 레이아웃을 바꾸고 필요 없는 것을 치우고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내 옷장이며 살림을 채워가야겠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나를 바꾸고 가꾸는 살림이 될 테니 이제 시작이다. 날마다 정리하고 닦고 쓸고 하나 결국엔 내 살림이고 내 것 아니던가.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던 곤도 마리에의 말처럼 나도 이제는 설레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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