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의 애쓰고 바쁜 손

추억은 같이 보낸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by 최림


온 산이 진달래로 붉게 물드는 4월이 되면 엄마는 떡을 했다. 늘 떡이 익숙했고 생일이 되면 명절도 아닌데 떡을 먹었다. 지금이야 집 밖을 나서면 케이크며 먹을거리가 풍부하지만 내 어린 시절엔 모든 게 귀했고 늘 먹거리가 풍부하던 시기는 아니었다. 잠만 푹 자고 일어나도 키가 크는 시절이라 그런지 동생과 나는 늘 음식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엄마의 애쓰고 바쁜 손을 모른 채 말이다. 겨울이면 집에 한말씩 가래떡을 했다. 떡집에서 갓 뽑아 온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가래떡을 꿀이나 조청, 설탕에 찍어 먹느라 바빴다.



국민학교 2~3학년 때로 기억한다. 우리 집에는 ‘쿠커’라는 전기냄비가 있었다. 엄마가 직장에 다니느라 우리 남매는 긴 방학 동안 점심 끼니를 둘이서 해결하곤 했다. 동생과 나는 매일 쿠커에 떡볶이를 해 먹었다. 쿠커에 물과 멸치를 넣고 고추장, 마늘, 설탕을 풀어 보글보글 끓기만을 기다렸다. 국물이 완성되면 썰어 놓은 가래떡과 어묵을 넣고 뚜껑 덮어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파, 양파도 넣고, 없으면 그냥도 해 먹었다. 대부분은 누나인 내가 해주었지만 동생도 눈썰미가 있어서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가래떡은 적당히 굳으면 얇게 썰어서 떡국용 떡이 되었다. 엄마랑 밤늦게까지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도록 떡을 썰었다. 어린 맘에도 얼마나 떡 썰기가 싫었는지 빨리 먹어서 없애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매일 같이 동생이랑 떡볶이를 해 먹었다. 그러면 떡 한말은 1주일을 못 가곤 했으니까.



여름이면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 반죽을 장독대 위에다 덮어놓았다. 보글거리는 거품이 막걸리 같은 시큼한 냄새가 나고, 반죽의 부피가 늘어나면 찜기에 면포를 깔고 쪄냈다. 하얀 반죽에 사과, 당근, 피망 등을 잘게 썰어서 반죽 위에 얹으면 알록달록한 찐빵이 되곤 했다. 쿠커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구우면 또 다른 기름진 빵이 되었다. 원피스 무늬처럼 골고루 색이 박힌 하얗고 노란 빵이 폭신폭신한 질감에 새콤달콤한 맛이라니, 아직도 입에 침이 고인다. 우리는 그렇게 빵 맛에도 익숙해져 갔다.



내가 저학년이던 시절 엄마는 보험회사에 다녔다. 보험이 뭔지 정확하게는 몰랐지만 엄마가 매일 출근하는 회사원이라 여겼다. 엄마는 점심시간이 되면 우리 남매가 눈에 밟혔나 보다. 본인 점심값이면 우리 남매가 한 끼 먹을 수 있는데 하는 맘이었을까? 그땐 밥값이 지금 기준으로 3000~4000원 정도 할 때였다.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며 혼자 가정이란 짐을 지는 젊은 엄마에게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우린 어렸고 엄마의 고됨을 알기엔 너무 미숙했다.


그럼에도 엄마가 사 오는 간식은 달콤하고 유혹적이었다. 김말이 튀김이나 꽈배기, 갓 만들어 자르지 않은 식빵 말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케첩이 나왔을 때다. 따뜻한 식빵을 덩어리째 쭉 찢어서 케첩을 발라먹으면 입에서 오묘한 맛이 났다. 새콤달콤한 토마토케첩의 맛은 엄마가 만든 딸기잼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늘 본인의 주린 배를 대신해 사 왔을 간식으로 우리 남매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눈에 밟혔을 엄마.



엄마는 그렇게 끼니를 거르다 나중에 먹기를 반복하면서 몸에 무리가 와 아프기 시작했다. 나중에서야 그게 당뇨라는 걸 알았다. 내가 고등학생 때는 엄마가 앓아눕는 일이 잦았다. 한 번은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데 엄마가 누워서 주삿바늘을 꽂고 있었다. 산파 할머니가 바늘을 꽂고 돌아가며 혀를 끌끌 차는 모습을 보는 일이 늘어났다. 축 처진 채 누워서 수액 맞는 엄마를 보는 건 힘들었다. 엄마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집안이 어둡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그때의 엄마보다 더 어른이 되었다. 얼마 전 엄마는 치매 판정을 받았다. 점점 어제의 일을 기억 못 하는 일이 잦아진다. 그래도 여전히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책 보며 살림도 혼자 한다. 약 먹는 것도 잊고서 어제 먹은 약을 좀 전에 먹었다고 실랑이를 하곤 한다. 아직도 먹을 걸 챙겨 드리면 나 먼저 먹으라고 주신다. 내가 자식인 건 아니 괜찮다.



가끔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 준 빵과 동생과 둘이 해 먹던 떡볶이, 엄마가 사다 준 식빵이 생각난다. 지금도 그 맛이 그리워서 떡을 하고 빵을 하나 보다. 아마도 내가 요리 선생이 된 이유가 아닐까? 늘 내 곁에 있던 엄마의 바쁜 손은 나를 이어 내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나는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되돌아본다. 추억은 맛이라 한다. 음식을 맛보며 떠올리는 것은 그 시절 함께 지낸 시간과 분위기가 그리운 건 아닐까. 나도 내 아이들에게 엄마처럼 맛있는 음식과 추억으로 기억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