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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하고 화창한 주말 산행

가볍게 안산 봉수대로

by 최림 May 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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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른하고 화창한 주말을 맞는다. 혼자서 얇은 바람막이와 운동복을 입고서 집을 나선다. 몸이 회복이 덜 된 채 산에 갔다 온 뒤 어지럼을 느꼈기에 한동안 오르지 못했다. 이제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듯하다. 온 산에 연둣빛으로 울긋불긋한 새싹들이 돋아나고 까치가 먹이를 찾으러 왔는지 자꾸 길에 내려앉는다. 이렇게 가까이 내려오는 일은 별로 없는데 아마도 벌레를 잡으려 하나 싶다. 너무나 간절하게 콩콩 뛰면서 바닥을 다니며 뭔가를 찾는 듯한 모양새다. 사람만 봄이 돼서 바쁜 게 아니었구나. 새도, 나무도, 계절도 모두 자기의 시절을 맞아 애쓰고 있구나.



 오르내리던 길은 몸이 기억하는지 눈길 닿던 구석구석 여기저기 살아나는 듯하다. 마음을 내려놓고 내 허물을 버리던 그 시간이 새록 떠오른다. 그 시간을 오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견뎠을까? 오늘 같은 봄을 맞으며 같은 마음가짐이었을까? 아마도 시절에 따른 마음은 있었어도 지금과 같은 평화로움과 고요함은 없었으리라. 다 자기의 때가 있고 시기가 있음을 안다. 그때가 언제인지, 어느 시간에 견뎌내야 하는지는 지나 보면 알 수 있다. 마주할 때는 모르던 것들을. 그러니 살아볼 만한 거겠지.



 온 산이 계절에 물들고 깨어나서 숨 쉬고 있음을 본다. 나무도 이름 모를 들풀도 모두 자기의 생명력을 다하며 열심히 견뎌내고 있다. 때로는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해 아름다움을 피워내기도 하고, 온전히 열매 맺기 위해 쓰고 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닌 자기의 때를 따라 시기에 맞게 피어나고 열매 맺는 시간들. 우리도 그런 시간이 있어야 한다. 자기의 가진 모든 역량을 다해서 피어나야 한다.



 때로는 누가 봐주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필요 없는 일이라도 남을 위해 피어나는 게 아니다. 나의 이로움과 필요에 의해 우리의 값어치는 내가 만들고 창조해 내기 때문이다. 누군가 알아주길 기대하지 않아도 되고 뭔가를 이뤄내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단지 우리의 치와 자기의 존재 여부는 내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결정하고 이뤄낸 것들에 대한 답은 내가 들으면 된다. 알아주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살아있으므로 우리가 원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얻으면 된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늘 애쓰고 힘들게 열심히 살아내지 않아도 된다. 나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세우고 몰아치지 않아도 되며, 때로는 놓아주고 풀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모두 그렇게 산다. 그래도 살아지고 살아낼 수 있기에, 살아내는 것이고 살아지는 것이라는 걸 배운다. 여유를 가지고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지. 가끔은 나를 놓아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숨도 쉬고 하늘도 올려다보고 피어나는 꽃도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그런 것도 모르고 살면 너무 안타깝지 않나? 여태껏 뭐 했나 싶기도 하고.



 안산 봉수대 꼭대기에 올라본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도시는 살아있으며 빌딩 숲 사이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 나도 있다. 여기 오를 수 있어서, 내려다볼 수 있어서, 그리고 많은 것들을 담고 안을 수 있어 감사하다. 이런 시간을 갖게 해 준 것도, 건강을 허락한 것까지 감사할 따름이다. 별말도 안 되는 이런 생각이 들어도 난 지금 이 순간을 느끼며 내 마음 가득 가진 생각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고 품어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가졌던 수많은 생각 사이에 나를 놓아본다. 나는 어디쯤 가 있는지 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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