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엄마랑 외출을 했다. 가끔 병원 진료를 다녀오면서 들르거나 특별한 그달의 행사가 있어야 하는 외출이었다. 가족모임을 한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엄마가 입맛이 없다는 이유로 며칠 전부터 뭔가 먹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예전 같으면 사는 음식, 파는 음식을 질색하면서 집에서 고기를 사다가 식구들이랑 같이 구워 먹는 걸 더 선호했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색소가 시뻘겋고 알록달록한 과자나 아이스크림은 배 아프다고 사주지 않았을까. 난 지금도 알록달록한 인공색소가 입혀진 아이스크림이나 음료를 먹지 않는다. 어릴 땐 저런 것을 먹으면 배 아프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연이 준 것만을 선호하면서 집에서 내 손으로 만들어 먹이길 바랐다. 물론 엄마 본인도 그렇게 우리를 키웠다. 그런 엄마가 달라졌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엄마가 남이 해준 음식이 드시고 싶었단다. 내가 한 게 아니라 뭐라도 남이 해 준 음식이 먹고 싶었다는 건 뭘까. 뭔가 헛헛한 마음이 들어 그럴까. 아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으로 인한 마음이었을까. 전과 같은 기억력은 아니나 아직 풋풋한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우리 엄마는 칠십 대 치곤 귀여운 면이 있다.
강원도 사람인 엄마는 막국수나 감자전, 옥수수, 메밀전병 등을 좋아한다. 늘 먹는 것이기도 하고 자라면서 많이 접한 음식이다. 오늘도 입맛 없다는 엄마랑 막국수 집을 찾아간다. 연희동을 향하는데 오늘따라 정기휴무란다. 기왕 나온 김에 함흥냉면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오래된 유명한 집이라 맛도 좋고 여름철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다. 운 좋게 기다리지 않고 바로 주문을 했다. 회 냉면 두 개에 엄마는 곱빼기, 나는 보통으로.
기다리는 동안 주전자의 육수를 엄마 것 한 잔, 내 것 한 잔 또로록 따른다. 면수에 다시다 조금 넣어 간을 맞춘 것일 텐데 이것도 맛있다. 속을 따뜻하게 풀어주는 맛이다. 기다리다 보니 무친 가자미 몇 점이 올려있고 뻘건 양념장을 얹은 회 냉면이 나온다. 엄마는 곱빼기라서 그런지 면사리가 작은 게 하나 더 있다. 그렇게 싹싹 젓가락으로 양념을 무치고 비벼서 골고루 양념을 발라 한입 넣어 본다. 얼큰하면서 은근히 매콤한 맛으로 입을 데워준다. 육수를 마시면서 알싸한 맛을 거둬낸다.
오랜만에 맛보는 냉면이다. 처음으로 기억난 냉면의 맛은 오장동 회 냉면이었다. 이십 대였을까. 그때는 오장동 냉면거리가 활성화되었을 때라 냉면집이 많지 않았고 다른 곳에선 냉면을 잘 팔지도 않았다. 줄 서서 먹던 때가 있었으니까. 백화점이나 그 외 다른 곳에서도 맛있는 냉면을 팔게 된 뒤론 오장동 냉면집이 많이 없어져서 그때만 못하지만. 엄마는 유독 면을 좋아한다. 당 때문에 소면을 잘 드시지는 않지만 메밀은 기가 막히게 좋아한다. 춘천에 가면 생각나는 막국수같이 그렇게 맛있는 메밀면을 늘 즐겨 드신다.
막국수 집이 오늘 휴일이 아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마음이 헛헛해서였을까. 아니면 나랑 시간 보내고 싶어서였을까. 난 착한 딸은 아닌가 보다. 늘 엄마를 챙기며 약을 빼먹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와의 시간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새삼 나의 무지가 엄마를 외롭게 했나 싶다.
특별한 일 없이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랑 별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면서 오는 시간 동안 생각해 본다. 지금처럼 입맛을 잃지 않고 건강하면 바랄 게 없겠다고. 하늘은 유월답지 않게 뿌옇고 날씨는 덥거나 시원하지도 않은 그런 날이다. 가끔은 엄마랑 외출을 해야겠다. 여름이 다가와 입맛을 잃기 쉬운 때에 다음엔 고기라도 한번 먹으러 갈까 싶다.
내 손으로 하는 음식만을 자식에게 먹이고 그런 삶이야말로 바로 하는 거라던 엄마. 그런 엄마가 남이 한 밥이 먹고 싶단다. 엄마의 그런 변화가 낯설다. 내가 자라오면서 보던 엄마는 어디 갔을까. 엄마의 병이 점점 깊어갈수록 지금 같은 일상을 기억할 수 있을까. 추억 속의 기억은 또렷하나 당장 오늘 아침, 어제저녁의 일은 착각하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아리다. 어쩌면 지금의 변화도 때론 생각나는 일상이 될 수도 있겠지. 지난 시간은 지금의 시간이 모여서 되는 것이니까. 난 엄마에게 회 냉면 한 그릇 대접하고 만족하는 그런 딸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