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바쁘다고 얼굴 볼 새가 없다. 마지막 4학년에 욕심이 많아서인지 연구소 일도 도맡아 하는 거 같고 학회 일에 여러 가지로 바쁘다. 곧 시험이라 밤새워가며 공부를 한다. 논문 마감이 얼마 안 남아 이번 주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데 어떻게 잘 돼가는 것인지. 난 이번 주 수업 종강이기에 다음 주 수업이 1회밖에 없다. 그래서 딸 보러 갈까 했더니 하는 말.
"엄마가 왔는데 잠깐 밥만 먹고 돌아가면 내 마음이 편하겠어?"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불편하니까 그렇지."
하긴 만나러 가려해도 딸의 얼굴만 보고 돌아오긴 쉽지 않을 터, 다음 주 시험이 연달아 있다니까 내가 참지. 보고 싶어 하는 건 나만 그런가. 주말이면 영재 교육한다고 어린 학생들 보조를 하고, 평일엔 수업에, 연구소 일에, 학회에 눈코 뜰 새 없이 다닌다. 어째 일복이 많은 거냐 욕심이 많은 거냐. 원체 아무것도 안 하는 우리 따님이 그렇게 학교에서 일만 하신다. 그래서 난 집에 오면 푹 쉬라고 가만히 두기만 한다. 언제 그런 시간을 가져 보겠는가 하는 맘이라 늦잠을 자도, 밤을 꼴랑 새워도 아무 말 안 한다. 다만 내가 해준 밥이라도 꼭 챙겨 먹고 가기를 바랄 뿐이다. 가서 힘내서 살라고, 주는 밥 먹고 기운 내 다니라면서 그렇게 나는 밥상을 차린다.
끼니는 잘 먹고 다니냐 물었더니 같이 다니는 친구가 밥을 잘 챙겨 먹으니 걱정 마시라 한다.
얼마 전 친구가 보석 바를 먹는데 뭔가를 뱉더니
"퉤, 퉤"
"너 뭐 하니?"
"얼음이 맛없어."
하면서 보석바 속의 보석을 빼더란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럼 먹지나 말지 하는 생각이 들어 웃기만 했다고 한다.
다른 원예학과 친구는 너 요즘 뭐하고 다니냐고 물으니
"조직배야."
"뭐? 조직배야(조폭이야)?
"조직배양이라고."
아무래도 딸이 바쁘긴 한가보다. 이런 시시한 이야기에 웃어 줄 사람이 필요했나?
주말 연휴까지 낀 시간에 얼마나 바쁜지 연락이 없다. 밤늦게 전화를 해서는
"엄마?"
"누구세요?"
"전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왜 젊은 언니가 전화를 받으세요?"
"엄마가 삐져서 전화를 안 받는답니다. 다음에 다시 걸어주세요."
"그럼 말이나 전해 주세요. 언니." 하더라는.
나나 딸이나 우린 이렇게 산다. 어찌 딸을 이겨보겠다고 하니 내가 진 싸움이다. 내 해바라기 사랑은 늘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냥 아무 일 없이 들어주고 응원해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너무 바쁘지 않게 자기를 잘 챙기면 싶지만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될까. 딸의 마지막 학기가 무사히 마무리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