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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Aug 05. 2022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

명화 리뷰


박수근은 이중섭과 더불어 국민화가라 불리지만 사후에나 빛을 본 대표적인 화가다. 얼마 전 덕수궁에서 열렸던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회를 다녀왔다. 이건희 기증 작품과 더불어 개인 소장 작품이 망라된 제법 많은 작품을 가지고 한 전시였다. 그림을 처음 그렸을 때부터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게 되어 있었고 드로잉이나 신문, 잡지 등에 연재한 삽화와 타계 전 일상의 사진도 있었다. 일기도 전시되어서 그의 달콤한 연애사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박수근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으나 밀레 같은 화가가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했단다. 18세에 조선 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가의 길을 걷는다.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한 화가인지 같은 주제를 시점을 달리해서 여러 작품으로 남겼다. 물론 그림엔 가족이나 부인, 이웃, 노점상의 여인 등 시대상을 잘 나타내 주는 그림들이 많다. 특히 길에 아기를 업은 소녀의 모습이 많다. 그때만 해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들이고 아기를 업고서 일하는 여인들을 많이 그렸다. 고단하고 힘든 세대를 잘 나타내 주는 그림들이다.


소개할 그림은 '나무(나무와 두 여인)'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가운데 헐벗은 나목과 양쪽에 광주리를 이고 지나가는 여인과 아기 업은 여인이 있다. 고단한 삶의 한 단면인 듯 앞만 보고 지나가는 여인의 모습과 그를 쫓는 눈길의 아기 업은 여인. 서로 지나가고 바라보는 상반된 입장이나 쉽지 않은 삶을 대변하는 듯한 모양새다. 헐벗은 나목의 모습은 일제와 전쟁을 지난 힘든 시대상을 표현한다. 그럼에도 나무는 힘 있게 가운데 자리를 하고 있고 가지는 잎사귀 하나 없는 암울한 계절을 드러내지만 굽어있어도 힘찬 필체를 가지고 있다. 박완서는 PX에서 만난 인연으로 '나목'이란 제목의 글을 써서 늦은 나이에 등단했다. 박수근을 모델로 했으나 고목인 줄 알았던 그가 나목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헐벗으나 살아있는 힘 있는 나무란 뜻이다.


이 그림은 조명 아래 어두운 상태서 볼 수 있게 되어서 인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사이즈도 컸고 당시 그림에 집중할 수 있게 어두웠기 때문이다. 박수근의 그림은 색상을 많이 사용 안 하고 단순하게 그렸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밑그림에 바탕을 칠하고 덧입히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림 재료나 물감을 구하기 어려웠던 때라 지인에게 부탁해서 외국에서 공수해 와서 그림을 그렸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이나 초기 그림엔 밝은 색상으로 그리기도 했다.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분청사기나 흙벽의 모습처럼 거칠고 따뜻한 색감과 단순화한 선으로 그림을 그렸다. '서양의 유화를 가장 한국적으로 잘 해석한 화가'라 불리기도 한다.


길 위의 소녀, 행상하는 사람들, 여인, 판잣집 등 일상의 소재를 화폭에 담았다. 만나는 모든 일이 소재가 되었고 그림의 재료가 되었다. 어떤 그림은 형체가 어떤지 알아보기 어려울 만치 덧입히기를 많이 한 작품도 있다. 이 덧입히기라는 화풍은 그만이 가진 고유한 화풍이라 할 수 있다. 거칠거칠하면서도 형태를 아주 단순화하고, 색을 아껴 쓴 듯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따뜻함이 깃들어 있고 고단한 일상에도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헐벗었으나 그 생명력은 살아있는 나목을 그린 이유기도 하다. 나무의 가지가 가늘고 힘없게 보여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고 힘 있는 모습에 모두 하늘을 향하고 있다. 마치 '나 살아있소'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그림과 글 생각과 시대상,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있다. 박수근 그림의 따뜻한 시선은 그의 마음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듯, 글도, 그림도 그를 알 수 있게 한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를 박수근만을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외국의 유명한 화가도 많지만 우리의 그림을 그린 화가도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그들을 오롯이 즐기는 시간이 허락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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