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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Aug 06. 2022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탱탱하게 붉은 목 넘김


커다란 토마토를 샀다. 게 익은 토마토를 아침마다 잘라주고 때론 갈아먹고 싶어서 한 박스를 샀다. 나는 토마토를 정말 좋아한다. 어릴 때는 달달하게 재워서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먹는 것을 좋아했다. 학교 갔다 오면 뚜껑 있는 스텐 밥통에 차곡 썰어 설탕에 절인 토마토가 있었다. 달달한 맛의 국물 방울까지 싹싹 핥으면서 동생과 내기라도 하듯 먹었으니까. 지금은 설탕을 넣어 재워먹지는 않지만 가끔 단맛이 그리울 때면 달콤한 꿀 한 스푼을 뿌려먹기도 한다. 어릴 적 기억 속의 달콤함을 소환하듯이 말이다.


오래전 엄마가 입원했을 때다. 혈당이 높아 의사가 입원을 권유했었다. 병원에서 주는 밥 외엔 먹지 말라고 해서 맘대로 음식을 들고 올 수도 없었다. 마침 입맛이 없던 엄마를 위해 드시고 싶은 것을 물었다. 엄마는 어릴 때 먹던 파랗고 커다란, 푸름이 들어서 붉게 되기 전의 시큼한 토마토가 먹고 싶다고 했다.


'겨울에 파랗고 시퍼런, 빨갛게 되기 전의 토마토라니 구할 수 있을까? 한 박스를 사면 있을지도 몰라, 원래 토마토는 익기 전에 수확을 하니 팔지도 몰라' 하며 길을 나섰다. 근처 마트 과일 코너에 들르니 덜 익은 토마토가 있었다. 손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시퍼렇고 큰, 발그레하게 익기 전의 토마토가 그렇게 자리했다. 깨끗이 씻어서 갖다 드리니 맛있게 드신다. 무슨 맛이냐 물니 알싸한 단맛이란다. 난 그 맛을 알 수 없지만 나이가 들어도 어릴 적 먹던 음식을 소환하는 마음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문득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파란 토마토를 동그랗게 썰어서 가루 묻히고 기름에 튀기듯이 구워냈다. 그 당시 익지도 않은 푸른 토마토를 튀기듯이 구워 요리하는 것을 보니 신선했다. 영화에선 그 메뉴를 카페에서 파는데 신기하고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릴 땐 토마토 스파게티를 많이 만들어 먹었다. 붉은 토마토를 껍질 벗겨내 자르고 페이스트와 월계수 잎, 양파, 마늘 등을 넣고 볶아 충분히 익기를 기다렸다. 때로는 고기를 듬뿍 넣어 미트소스로 하거나 그냥 토마토소스로 먹기도 했다. 스파게티면을 미리 삶아 소스가 졸아들면 면을 넣고 어우러지면 완성이 되니까.


뭐니 뭐니 해도 토마토는 적당하게 한입 크기로 잘라 샐러드에 올리거나 신선하게 잘 익은 것을 갈아서 주스로 마시는 게 제일 좋다. 전엔 갈아먹는 음식을 선호하지 않았지만 신선한 붉은 액상의 목 넘김은 좋아한다. 입맛도 변해가듯 내 토마토 취향도 바뀌는 거 다.


시원하게 베란다에 내놓아 빨갛게 익기를 기다리고 내일부터 하나씩 식탁에 올려야겠다. 붉게 익어가는 토마토를 보면서 깊어가는 여름을 맛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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