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누구나 자기만의 방을 꿈꾼다. 나도 그랬다. 그때는 가족 모두 한방에서 잘 때였다. 커가면서 식구들과 같이 잠들지 않는 오로지 나만의 장소를 원했다. 혼자 음악을 듣고 홀로 누울 수 있는 내 방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주어졌다.
그때 우리 집은 한옥에 대청마루까지 있는 추운 집이었다. 내 방은 격자무늬의 창호지 미닫이문이었다. 밖에서 나는 소리가 모두 들리고, 방에서는 입김이 새어 나오는, 아침이면 햇살에 눈부시게 환해지는 그런 방이었다. 겨울이면 발이 시려 두꺼운 이불을 깔아야만 했다. 그 뒤 내가 가진 방은 더 작고 볼품없었다. 넓은 한옥에서 작은 빌라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거기서 꿈꾸고 일어나며 성인이 되어갔다.
결혼 후 방 2개짜리 신혼집은 나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내가 혼자서 숨 쉬고 사용하는 곳이 아니었기에 실제로 내 방은 없어졌다. 퇴직 후 집에서 주식도 하고 책도 보는 곳이 있었지만 나만의 장소라는 생각은 없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니 그나마 그곳도 사라졌다. 가끔 내가 차지하던 방은 아이들 몫이었다. 시간이 나면 주방 테이블에서, 안방에서 거실로 상을 펴고 자리를 옮겨 다녔다. 시험을 준비할 때면 도서관을 가거나, 아이들이 없는 시간 아이 방을 사용했다. 정작 내가 생활하고 살림을 하는 일 하는 곳이 내 차지가 되었을 뿐, 나를 위한 장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성인이 된 자녀들과 유치원 이후 처음으로 모두 같이 집에 있게 되었다. 물론 나는 일이 없어지기도 했거니와 다 큰 아이들의 매 끼니를 챙겨야 해서 다시 식탁으로 돌아가야 했다. 거기서 책도 읽고 수업계획도 세우고, 일도 하며 지냈다.
아이들의 독립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북적이던 좁은 집은 사람 없는 시간이 길어지고, 곧 방 2개가 생긴다. 어느 방으로 갈지 정하기만 하면 된다. 앞으로 같이 저녁 먹을 식구도 없고, 내가 부르면 대답하고 나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공간적인 여유가 생기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할까? 늘 붙어있던 아이들을 내보내서 인지, 빈 공간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다.
어릴 때는 그렇게 가지고 싶던 내 방은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면서 잊고 살게 된다. 마치 내가 아닌, 가족을 위하고 남편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아이들을 챙기며 그들의 성장에 발맞춰서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나는 저만큼 어딘가에 있는지 인식 못 할 때가 많다. 그런 나의 존재감 없음을 자각하며 내 일을 준비하고 사회로 나왔을 때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돈의 액수에 관계없이 일을 할 수 있고, 일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마치 내 방을 처음 얻었을 때의 기쁨 같다고나 할까.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을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빈 방에서 글을 쓰고 수업을 듣고, 책을 보며 지냈다. 잠깐이지만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이 주어졌다. 약간의 자유를 만끽하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방학에도 각자 연구소에서, 비대면 연수로 바쁘다. 겨우 오늘 같은 긴 연휴나 되니 집안이 북적인다.
늘 혼자만의 시공간을 꿈꾸지만 그런 시간은 오게 되어 있다. 나만의 장소는 아이들의 성장으로 인해 빈 방으로 돌아왔다. 문득 지난 세월이 떠올라 이른 독립이 서글프다. 기쁜 일이자 각자 기대에, 꿈에 부풀어 있기도 하다. 나도 이제 주어진 시간 앞에 새로운 기회로 삼아야겠다. 공부도 하고 책도 맘껏 펼쳐 놓아 치우지 않아도 되는 방이 생긴다. 내게 주어진 아이들의 독립 앞에 나도 지천명이라는 시간을 잘 활용해 봐야겠다. 작은 계획들 앞에 실천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어야지. 그리고 아이들의 앞날에 축복을 빌어주면서 오늘부터 나만의 공간을 오롯이 사용하는 방법들을 배우리라. 내 시간들 앞에 새로운 마음으로 우뚝 서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