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부부싸움

칼로 물 베기 인지 모를

by 최림


한 친구가 모임에 못 온다길래 전화를 했더니 남편과 다퉈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단다. 얼마나 크게 다퉜으면 그럴까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안 됐다. 어린 아들들 앞에서 다퉜을 거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나도 그럴 때가 있었고 아직도 남편과의 사이에서 투닥거리며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이 있다. 물론 살아간 세월 앞에 빈도가 잦아드는 것은 사실이다.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서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린 시절엔 누군들 그런 시간을 피해가진 못할 것이다.


얼마 전 남편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을 때 큰 소리로 심하게 투닥거렸다. 나는 곧 개강이 목전이라 조심해야 될 시기였다. 더구나 기침이 심상치 않아 '딸도 오지 말라고 할까?' 하는 내 물음에 조심성 없이 '괜찮다'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와 딸에게 전염이 되었고 같이 양성이 나와서 격리되었다.


상대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원래 그런 사람 일 수도 있고, 나랑 살면서 바뀐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삶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으니까. 지나온 세월 앞에 깎이고 마모되어서 서로에게 맞춰지는 게 아닐까. 둥글어진다는 것은 나의 뾰족함이 작아지고 남의 두드러진 모난 부분을 눈감아 주는 것일 테지.


딸이 치킨이 먹고 싶어 마련한 야식에 둘러앉아 남편의 말투를 지적한다.


"왜 나만 미워하냐고?"


"엄마는 왜 결혼을 했어?"


"내가 잘못했네!"


각자 한 마디씩 하면서 장난 아닌 말로 마무리가 된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같이 지낸 세월에 별것 아닌 다툼도 금방 갈무리가 되기도 한다. 처음부터 쉬운 상대는 없다. 결코. 살면서 내가 만만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허물을 이해하고 감싸 줄 수 있는 그런 심성이 중요하지 않을까.


친구의 부부 싸움에 내 마음이 심란하다. 늦게까지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자녀들 돌보는 일 만도 벅찰 텐데 여유로운 마음으로 보듬어 줄 수는 없었을까? 본인이 견뎌야 하는 일상과 회사일, 자녀의 몫이 오롯이 느껴진다. 더구나 심성 깊은 마음씨로 남을 보듬어 주고 본인의 아픔을 삭여 내야 했을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리다. 부디 별 걱정 없이 마무리되어 가볍게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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