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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공 Oct 11. 2021

'베이'자 돌림 여행

홍콩에 머문 지 열흘째

풋내가 나서 기억에 남는, 정착기 즈음의 여행

   하루 동안 스탠리 베이, 리펄스 베이, 그리고 코즈웨이 베이에 모두 다녀왔다. 세 지명에 모두 바다의 만(灣)을 의미하는 베이가 들어있지만 스탠리 베이와 리펄스 베이는 바다로 유명하고, 코즈웨이 베이라고 하면 주로 시가지를 지칭한다. 홍콩에서 베이로 끝나는 지명들 중 가장 유명한 셋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고, 장소에 대해 나보다 설명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날을 기록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홍콩에 체류하는 경험은 여행은 가성비 안 나오는 취미라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는데, 이 날의 여행이 그 변화의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생각하던 바와 달리 여행은 사실 거창할 필요도, 돈을 많이 쓸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천생 집순이, 나무늘보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새로운 곳을 돌아다니며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었던 거다. 

   또한 타지에서 불안정한 정착기를 보내고 있을 때 처음으로 익숙한 사람을 만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오랜만에 맛본 편안함이 기억에 깊게 남았다. 도착한 지 열흘 째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잠도 설치고, 새로운 사람들과 익숙지 않은 언어로 대화를 하며 생활환경을 만들어 나갈 때였다. 이 날 만난 친구는 철복이라 칭하겠다. 철복이는 십년지기 친구로, 당시 홍콩에서 학교를 다니는 중이었다. 홍콩에 머무르는 동안 서로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큰 힘이 되었다. 

코스웨이 베이에서 만난 피카추 버스 


진한 홍콩의 향, 스탠리 베이

   코스웨이 베이에서 철복이를 만나 스탠리 베이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40이나 40X번 미니 버스를 타면 되는데, 나한테는 홍콩에서의 첫 미니버스 탑승이었다. 서울의 마을버스 격인 홍콩 미니버스는 일반 버스보다 난도가 높다. 하차벨이 없어서 내리기 전에 기사에게 내리겠다는 의사를 구두로 전달해야 하는데, 버스기사들이 영어를 잘 사용하지 않아 광둥어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홍콩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광둥어로 내리겠다는 말을 거의 제대로 못 쓰고 홍콩의 만능어인 ‘음거이’나 영어로 '익스큐즈 미'라고만 했다. 둘 다 정확한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용기 내어 그 말을 뱉고 나면 미니 버스 안에는 이상한 기류가 잠깐 돌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기사님은 대충 알아들으실 수 있었으니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한 마디 외우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익히려고 하지 않은 게 부끄럽다. 아무튼 첫 미니버스 탑승은 홍콩에 오래 산 친구 덕분에 별 탈 없었다. 하나하나 새롭던 창밖의 뷰가 떠오른다. 

   버스에서 하차해 '스탠리 플라자'라는 쇼핑몰을 지났다. 쇼핑몰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부터 이미 바다 경치가 보였다. 

홍콩의 쇼핑몰 메뉴판은 많은 경우 이런 디자인 양식을 따른다


   한국도 많은 지역이 바다와 맞닿아 있지만 홍콩은 사방이 더욱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바다에 접근하기 쉽다. 내가 사는 곳에서도 칠 분 정도 걸으면 도시의 야경이 멋진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도시와 자연의 바다는 느낌이 다르다. 스탠리 베이에서 홍콩에서는 처음으로 자연의 바다를 마주했다. 그렇다고 이 근방이 깡시골은 아니었지만 육지 쪽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몇 빌딩을 제외하고는 산과 바다만 탁 트이게 보였다. 속이 시원했다. 


   높이가 조금 있는 곳에서 경치를 조금 감상하다 바닷가 쪽으로 내려왔다. 부두 같은 곳이 바다 쪽으로 빠짝 튀어나와 있는데 전통 양식의 지붕이 세워져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관광객들이 바다를 구경하기 편하도록 조성한 공간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 배가 정박하는 부두이다. '블레이크 부두'라고, 멋진 이름도 갖고 있다. 

의미는 모르겠는 귀여운 작품


    부두 쪽에서 스탠리 메인 스트리트 혹은 스탠리 프로미네이드라고 불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스탠리 베이에 다녀왔다면 혹은 스탠리 베이를 안다면, 대개 이 방향으로 바라본 그림을 떠올릴 것이다. 파스텔톤의 건물들과 거리를 주욱 잇는 서양식 오픈 테라스 레스토랑 또는 펍들, 그리고 바다에 떠있는 오색의 페리들 말이다. 한국의 바닷가와는 건물의 양식은 물론이고 공간을 채우는 색감도 사뭇 다르다. 이국적인 분위기에 한껏 설레어 "여기 진짜 홍콩 같다"는 혼잣말을 반복했다. 홍콩에 온 지 겨우 열흘 된 주제에 말이다. 날이 흐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이 풍경에 홍콩스러움을 덧칠했다. 홍콩은 흐린 날씨와 유독 잘 어울린다. 맑은 날씨의 홍콩은 쾌청하니 아름답고, 흐린 날씨의 홍콩은 사람을 듬뿍 적시고 홀린다. 

프레임에 담긴 풍경을 좋아한다. 액자가 되기 때문이다. 


   홍콩에 있다 보면 날 것의 느낌이 가득하면서 동시에 귀엽기도 한 페리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이때는 여객선을 아직 못 타본 때이니, 스탠리의 장난감 같은 페리들이 내가 홍콩에서 처음으로 본 페리였다. 


   메인 스트리트를 따라 걷다 보면 한쪽 끝에는 작은 해수욕장도 있다. 구글 지도에 'Stanley Back Beach'로 검색하면 나오는 곳이다. 해수욕장에 배 한 척이 버려졌는지, 주차되어 있는지 뒤집혀 있었다. 괜히 멋져 보여 사진을 한 장 찍었다. SNS를 보면 이 배 사진이 많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생각해서 사진을 찍어간 모양이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


   스탠리 메인 스트리트에는 외관이 톡톡 튀는 건물이 많다. 특히 눈에 띄는 펍이 하나 있었는데, 영화에 나올 것 같이 사랑스러운 이층 집으로 외벽은 노란색이었다. 동시에 가격은 사랑스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홍콩의 많은 서양식 식당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지역을 불문하고 이런 곳에는 주로 서양인 손님들이 많다. 우리도 수많은 식당들 중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스탠리 바닷가 공원의 한 식당. 외관이 독특하다


메인 스트리트에서 본 꽃. 어떻게 한 뭉치에 저렇게 다양한 색이 한꺼번에 피어날 수 있는지.


전형적인 여행지의 시장, 스탠리 마켓

   이 지역의 마지막 코스로 스탠리 마켓을 방문했다. 스탠리 베이에 가는 사람들은 한 번쯤 방문하는 곳이라, 나도 가야 할 것 같아서 갔다. 깔끔한 쇼핑몰보다는 전통시장에 더 가깝지만, 시끌벅적하고 기가 빨리는 분위기는 아니다. 옷가지, 가방, 음식, 기념품, 생필품 등 온갖 것들을 파는데 그림을 많이 파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여행을 와 그렇지 않아도 설레는 마음에 구매욕을 불 지피는 그림이 있었다. 언어는 불어인데 그림은 아시아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방에 하나 걸어놓기로 하고 기분 좋게 구매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고 보니 꽤 유명한 만화였다. 귀걸이도 하나 샀는데, '복'이라고 적힌 봉투에 담아주셔서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복 받은 것 같더라. 

이곳에서 그림을 구매했다. 저작권 침해를 조심하기 위해 가게에 그림을 걸어둔 모습만 싣기로 한다. 


   구매하지 못해 아쉬운 것도 있다. 그릇을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가격이 저렴하고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무늬가 화려하고 예뻐 사다 두면 잘 쓸 것 같았다. 그러나 도보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짐이 무거우면 방해가 될 것 같아 고민하다 사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사 온 컵과 그릇을 기념품으로 의미 있게 잘 쓰는 것을 시간이 더 지나 깨달았기 때문에, 좀 무거워도 사 올걸 후회했다. 무슨 기념품을 좋아하는지도 여행을 여러 번 해봐야 아는 법이다.

   스탠리 마켓을 마지막으로 그곳에서의 일정은 끝냈다. 홍콩에 어느 정도 살고 나서 스탠리 베이에 갔다면 메인 스트리트보다 서쪽에 위치한 스탠리 마 항 공원(Stanley Ma Hang Park)에도 반드시 갔을 것이다. 구글 지도 상에서 꽤나 넓게 자리를 차지하는데, 절도 있으며 낮은 언덕에서 바다를 마음껏 감상할 장소가 있는 듯하다. 스탠리 바닷가 공원에 비해서는 방문 후기가 훨씬 적지만, 오히려 이런 데가 현지인들만 아는 좋은 장소일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이 날은 철복이를 따라다니기 바빴다. 여행치에 길치까지 더한 인간을 잘 이끌어주니 어딜 데려가든 그저 고마웠다. 

   버스를 타고 리펄스 베이로 향했다.


리펄스 베이

   리펄스 베이 근처에서는 부촌의 냄새가 났다. 바다 근처로 딱 봐도 고가일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백인 아이들이 보모의 손을 잡고 다니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홍콩에서는 한국보다 보모들을 더 흔히 볼 수 있다. 주로 동남아시아인들이다. 매주 일요일이면 보모들이 휴일을 맞아 온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주로 육교의 그늘진 곳을 찾아 휴식을 취하며, 몽콕이나 삼세이포 같은 지역으로도 나들이를 많이 나간다. 나중에 더 알게 되었지만 부유해서 보모를 고용하는 집안도 있고, 부부 중 한 명만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는 맞벌이를 하고 보모를 고용하는 것이 더 이득이기 때문에 보모를 고용하는 집안도 있다. 

   리펄스 베이는 스탠리 베이보다 신식이고 도시스러웠다. 해수욕장의 크기도 훨씬 컸다. 이곳 바다를 처음 마주했을 때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으면서 어색한 느낌이 들었었다. 여행 후에 사진을 다시 훑으며 이유를 깨달았는데, 보통의 해수욕장과는 달리 리펄스 베이의 모래에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해수욕장 모래에 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가운데의 나무는 포크처럼 생겼다


   한국에도 리펄스 베이 같이 바다 근처에 부촌 아파트가 위치한 동네가 많다. 모래, 물, 건축물이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분명히 느낌은 달랐다. 무엇이 차이점을 만드는지 어느 요소를 딱 하나 짚어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미세한 모래 색의 차이, 물의 빛깔의 차이, 건물의 디테일 차이 등이 어우러져 전반적으로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다. 혹시 하고 멋진 일몰을 기대했지만 볼 수 없었다(나는 남은 몇 달 동안 하늘에 뭐라도 맡겨 놓은 사람처럼 노을에 집착하게 된다). 아무렴, 이미 기분이 잔뜩 나니 바다만으로 충분했다. 철복이는 재미있는 친구다. 십 년 전부터 그랬듯이 철복이는 재롱을 부리고 나는 깔깔이를 맡는다. 타지라고 예외는 없었다. 장소는 타지였지만 대화는 십 년 전에 다니던 고등학교의 것이었다. 즐거운 인지 부조화였다. 


   당시는 1월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다. 물론 한국의 1월보다는 훨씬 따듯하지만 바다로 여행객들을 불러들일 정도의 날씨는 아니다. 덕분에 해수욕장에 전세를 낸 것처럼 즐길 수 있었다. 파도소리가 크게 잘 들렸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기도 했다. 

   해수욕장 한쪽 끝에는 공원이 조그맣게 있는데 라라랜드가 떠오르게 만들었다. 가로등이 마치 영화 세트장의 조명처럼 공원의 한가운데를 비추었다. 조명이 닿는 공간은 마치 무대 같아서 라이언 고슬링이랑 엠마 왓슨이 춤을 추고 있다 해도 놀랍지 않았을 거다. 낭만에 한껏 젖어 라라랜드의 OST 'Another Day of Sun'을 들으며 이 경치를 즐겼다. 실제로 춤을 추는 사람은 없었지만 대형견과 산책을 나온 사람은 있었다. 옷차림을 수수하게 나온 것을 보면, 그저 일상적으로 반려견과 산책을 나온 것일 테지만 나에게는 비일상적인, 여행의 예쁜 장면으로 남아있다. 



   해수욕장 근처 건물들에는 간혹 중간에 구멍이 뚫려있는 경우가 있었다. 철복이가 건물 사이에 있는 구멍의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용이 지나가는 구멍이란다. 그러고 보니 홍콩 사람들은 용을 좋아하는 것 같다. 홍콩의 대표적인 등산로인 드래곤스 백을 포함하여, 상호명 및 지명에 'dragon'이라는 단어가 자주 포함된다. 어떤 건물은 용이 지나갈 구멍만 냈을 뿐 아니라 건물을 곡면으로 지어 용이 하늘을 가르는 몸짓을 형상화한 것 같기도 했다. 


코스웨이 베이 시가지

   하루에 바다를 두 군데나 누비고도 모자라 기어이 코스웨이 베이에 가서 쇼핑까지 했다. 홍콩에 도착하고 이삼 주 정도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돌아다닌 것을 보면 철복이와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 빨리 집에 가고 싶지 않았었나 보다.  

편의점에서 본 귀여운 음료수팩. 무민을 좋아하는 친구가 생각나서 찍었다. 가격은 귀엽지 않다. (할인 전 5700원)


   우선 'Lee Theatre'라는 쇼핑몰에 갔다. 무슨 쇼핑몰 이름이 '이씨네 극장'이람. 한참 생필품과 옷가지를 사야 할 때였기 때문에 유니클로와 무지에 들렀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무지 카페를 봤다. 지금이야 압구정 거리에 가면 각종 유통 브랜드들이 마케팅을 목적으로 브랜드 카페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유통업종이 공간으로 마케팅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무지하면 정갈한 이미지가 떠오르니 무지 카페의 음료와 공간도 깔끔할 것 같았다. 무지 카페는 가지 않았지만 철복이와 무지에서 솜사탕을 사 먹은 기억이 떠오른다. 무지는 솜사탕마저 직육면체 모양으로 정갈하게 생겼다.


   철복이는 유명한 밀크티 집이 가까운 곳에 최근에 생겼다며 먹고 가자고 했다. 이씨 극장 바로 옆에는 타임스 스퀘어가 있었는데, 그 안의 '헤이티'라는 음료점이었다. 타임스 스퀘어는 뉴욕과 서울 영등포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홍콩 코스웨이 베이에도 있더라. 


   주말의 문을 여는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코스웨이 베이 거리와 타임스 스퀘어에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헤이티 매장이 가장 북적북적댔다. 헤이티는 중국 본토에서부터 인기가 많은 브랜드인데 당시에 홍콩에 갓 수입되었다. 한국에서는 밀크티 하면 공차라는 인식이 있지만, 홍콩과 중국에서 공차는 그렇게 인기 있는 브랜드는 아니다. 헤이티처럼 더 맛있는 브랜드가 많기 때문이다. 타임스 스퀘어 지하의 한 구석을 작게 차지하는 이 매장 앞에는 엄청난 줄이 있었다. 주문을 해놓고 마음껏 다른 곳을 쇼핑하고 와도 될 정도로 대기 인원이 많았다. 끝끝내 음료를 받았을 때 간판이 보이게 사진을 찍었다. 음료를 드디어 받아 든 다른 사람들 대부분처럼 말이다. 이후로도 이 매장에 여러 번 왔다. 밀크티 아이스크림에 흑당 소스와 타피오카 펄을 들이부은 메뉴를 가장 좋아했다. 


   철복이와 나 모두 체력을 바닥까지 긁어 소진했기 때문에 미련 없이 재빠르게 헤어졌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여행이 끝이 아니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타임스 스퀘어에서 정류장까지 이동하는 길마저 여행이 되었다.

   거리에는 광둥 스타일1 과일가게들과 잡화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며칠 전 센트럴에서도 봤으니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또 봐도 재미있었다. 홍콩에 있는 내내 항상 흥미롭게 관찰했다. 그 이유는 과일을 좋아하고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과일들이 많아서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광둥어를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읽어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기 때문에 홍콩 사람들이 일하고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한정적인 정보밖에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새롭고 흥미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외지인의 입장으로 몇 달간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이런 현지 상점이 홍콩의 정체성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홍콩에서 이름 좀 날린다는 '베이'들은 모두 들른 하루. 집에 돌아와 휴대폰 앱을 확인하니 만 팔천 보나 걸었다고 알려줬다. 기록적인 일이라 화면을 갈무리해서 저장까지 해두었지만, 한두 달 지나고 나니 더 이상 많이 걸었다고 딱히 놀라지 않게 되었다. 2019년 2월은 하루 걸음 수의 한 달 평균이 만 보가 넘는다. 유독 홍콩에서는 많이 걸었다. 그리고 걸음 수만큼 많은 일들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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