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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향기, 그림자

3.

by 김빗

'참 오랜만에 이 동네를 벗어나는구나. 오래도 숨어 살았네.'

우미는 작년에 이혼하고 일 년 이상을 원룸에서 홀로 지냈다. 요리할 의욕도 사라져 대부분의 끼니를 사 먹거나 배달 음식으로 때웠다.
그녀는 눈이 떠지는 대로 일어나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동네 부근을 배회하며 하루를 보냈다.

올해 중학생이 된 딸의 양육권은 남편에게 양보했다. 자신은 경제적 능력도 없었거니와, 아이도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했기에 어려운 선택은 아니었다. 시부모님이 손녀를 무척 아꼈기에 딸을 위해서라도 양육권은 포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우미는 호정의 결혼식 때 안 갔지만 호정은 우미의 결혼식에 참여했었다. 우미는 대학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했기에 두 사람이 연락을 주고받을 때였다.

집을 나서려던 우미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초라함을 느꼈다. 이혼한 후론 화장도 안 하고 편안한 외출복만 입고 다녔던지라 외적인 모습에 무감각했다. 그런데 호정을 만난다고 생각하자 프로필 사진에서 본 그녀의 세련된 모습이 떠올랐다.

우미는 잠깐 고민하다가 몇 벌 되지 않는 옷 중 그나마 멀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직 햇볕이 뜨거운 9월에 입기에는 두터운 감이 있었지만 달리 대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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