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카페에 들어서자 멀리 호정이 보인다. 그녀가 우미를 발견하고 다가온다. 환한 미소와 윤기 나는 피부, 어릴 때보다 더 세련되고 예뻐진 호정이다. 호정은 양팔을 흔들었다. 우미도 손을 흔들었지만 어색한 손놀림이다. 마주한 둘은 양손을 맞잡았다.
호정의 손이 거칠었다. 우미는 그녀의 손을 처음 잡아봤기에 원래 어땠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호정이 반갑게 인사하며 우미의 손 이야기를 꺼냈다. 손이 너무 부드럽고 따뜻하다고. 호정의 목소리로 이 사실을 확인받자 우미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의 초라함도 어느 정도 상쇄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연주 통해서 소식 들었어."
연주.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안부 연락을 하는 친구. 우미가 먼저 연락하지 않아도 연주는 지치지 않고 연락했다. 우미도 그녀의 연락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문자가 오면 답장해 주고, 전화가 오면 받아주었다. 최근에 대화한 대학 친구는 연주뿐이었다.
"그랬구나. 그럼, 다 알겠네."
"응."
호정은 입술을 앙다물며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미는 괜찮다는 걸 보여주려고 태연하게 말했다.
"지난 일인데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호정은 말없이 쓴웃음만 보였다. 우미는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목소리를 조금 높여 물었다.
"애기는 잘 크지?"
"응,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는 걸. 언제 다 키울지 막막하네."
"금방 커. 우리 애는 올해 중학교 들어갔어."
호정은 미소를 머금고 우미를 바라보았다.
"한 번씩 봐?"
"아니."
"왜?"
우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호정은 더 물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학원 한다고 들었는데."
"이제 안 해."
"요즘은 다른 일 해?"
"지금은 아무것도."
"그렇구나."
"넌 학교 계속 나가?"
"나도 관뒀어. 지금은 평생학습관에 있어. 마음이 훨씬 편해."
"강사로?"
"수업도 하고 사무 일도 보고 이것저것 다 해. 주로 어르신들 상대로 시 쓰기 강좌 하는데 아이처럼 좋아들 하셔."
"잘됐네. 마음 편한 게 좋은 거지."
"안 그래도 네가 부산에 있단 소식 듣고 할 말이 있었거든."
"뭔데?"
"부산에서 문화센터 운영하는 지인이 있는데 소설 창작 강사 구한다고 하더라. 우미 네가 해보면 어떨까 해서 말이야."
"내가? 부산에도 지역 작가 많이 있을 건데, 굳이 왜 나를?"
"음... 그쪽에 사정이 좀 있나 봐. 나한테 괜찮은 강사 없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네가 생각났어."
우미는 호정의 제안에 선뜻 대답을 못하고 망설였다. 호정은 우미가 부담 갖지 않도록 부드럽게 말했다.
"당장 결정하라는 건 아니야. 곧 센터장님 뵈러 갈 건데 같이 가서 얘기 들어보고 천천히 결정해도 돼."
"언제 가는데?"
"괜찮으면 내일 가볼래? 오늘은 오랜만에 너 만났으니 맛있는 것도 먹고 같이 시간 보내고 싶어."
우미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