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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향기, 그림자

5.

by 김빗

우미와 호정은 저녁을 먹고 대학 시절 얘기로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호정은 예약해 놓은 숙박업소로 갔다. 집으로 돌아온 우미는 내일 얘기해 보고 괜찮으면 창작 수업 강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늘 글을 쓰며 살아온 우미였지만 지난 5년 동안은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았다.
쓰지 않은 건지, 쓰지 못한 건지, 쓸 수 없는 건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는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지만 호정의 제안을 듣자,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생의 열망이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쓸 수 없지만, 누군가가 쓸 수 있게끔 돕고 싶다.'

우미는 글을 쓰지 않는 기간 동안 강박적으로 텍스트 읽기에 몰두했다. 읽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읽기와 쓰기는 다르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글을 쓸 때의 쾌감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자신은 죽는 순간까지 써야 하는 사람임을 그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쓰고 싶지 않았다. 섣불리 놀려댄 자기 손가락이 가족들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음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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