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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향기, 그림자

7.

by 김빗

규철이 운영하는 문화센터에서는 악기, 요가, 그림, 요리, 수공예품 만들기 등 다양한 강좌를 개설했다. 작년부터는 문학 창작 강좌도 개설되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모든 강좌는 당연히 재료비와 강의료를 받고 진행되었는데, 문학 강좌에 강의료를 책정하자 지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일정 수 이상의 수강생이 모이지 않으면 강좌를 개설할 수가 없었다.

이에 규철은 문화재단과 정부 지원사업 부처를 찾아다니며 문학 창작 강좌에 대한 지원금을 호소했다. 결실 끝에 그가 운영하는 문화센터에서 국가 지원금을 받아 문학 강좌를 무료로 개설할 수 있게 되었다.

문학 창작 강좌는 당시 강사의 의견에 따라 수강생 정원을 열 명으로 지정해 공고했고, 금세 인원이 마감되었다. 지원한 수강생들 대부분이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었다. 강사는 50대 초반으로 부산에서 활동하는 지역 작가였다. 그는 수강생 중 처음 글쓰기에 도전하는 분들도 있을 걸로 생각해 아주 기초적인 이론부터 차근차근 강의해 나갔다.

총 12회 차 수업 중 6회 차가 끝났을 무렵, 규철은 담당 공무원의 전화를 받았다. 강사에 대한 민원이 접수되었다는 연락이었다. 내용인즉슨, 강사가 특정 수강생을 차별하고 무시한다. 또 수업 내용이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나올법한 뻔한 소리로 일관되어 있으며, 강사가 썼다는 소설은 저열하기 짝이 없어 그가 누군가를 가르칠만한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원금을 제공한 부처에서는 규철에게 이에 대한 규명을 요구했고, 민원 내용이 사실로 판명되면 모든 지원금을 회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놀란 규철은 강사를 만나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았다.

강사 역시 무척 놀라고 당황했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차별한 일이 결단코 없다고 했다. 민원을 접수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니 한 수강생의 아들이었다. 수강생의 이름을 들은 강사는 짚이는 것이 있다는 듯 크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강사는 안 그래도 신경 쓸 일이 많은 규철에게 부담 주지 않기 위해, 자기 선에서 해결하려 한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강사는 열 명의 수강생 중 60대 중반의 한 수강생이 조금 별난 구석이 있었다고 했다. 미리 공지한 과제는 해오지 않으면서 자신이 쓴 시를 읊으며 평가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처음 몇 번은 수강생의 시를 들어줬으나, 내용이 유아적이고 수준 미달이라 어느 순간부터는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그 수강생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다른 수강생들이 해 온 과제에 일일이 딴지를 걸었다.

수강생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시비에 맞서자, 그 수강생은 인신공격성 비난을 쏟아냈다. 보다 못한 강사는 시비를 건 수강생에게 그러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그 수강생은 다음 회차 때부터 수업에 나오지 않았고, 얼마 뒤 그 사람의 아들이 민원을 접수한 것이다.


규철은 부처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강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공무원은 굉장히 난감해했다. 민원을 넣은 사람이 고위직에 줄이 있는지 자신을 비롯한 부처의 모든 담당자가 구청장에게 크게 질책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징계위원회가 열릴 것 같으니, 강사에게 미리 통보하라고 규철에게 전했다. 규철은 이를 강사에게 알렸고 화가 난 강사는 자신이 받은 강사료를 돌려주며 더 이상 강의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일로 문학 창작 강좌는 중단되었고, 지원금도 모두 회수되었다. 규철은 사비로 강사에게 강사료를 지급했다. 그는 문학 창작 강좌가 다시 열리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몇 달 뒤 공무원에게 전화가 왔다. 모든 오해가 풀렸으니, 내년에 다시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규철은 문제의 수강생은 안 받기로 하고, 올해 강좌에 대한 서류를 작성해 지원금을 신청했다. 서류가 통과하자 그는 작가협회에 연락해 강사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 일을 알고 있었던 작가협회는 지역의 모든 작가에게 공문을 보내 규철의 문화센터에서 개설되는 강좌에는 참여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이것이 사건의 경위였다. 규철은 이 일을 호정에게 호소했고, 호정은 우미가 부산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강사 자리를 제안했다.

규철을 통해 그간의 사정을 알게 된 우미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제가 해볼게요."

그녀의 말에 규철과 호정은 표정이 밝아지며 감사의 말과 응원의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역시나 우미는 감정 변화 없이 차분하게 응했다.

"단, 조건이 있어요. 제가 짠 커리큘럼에 간섭하지 말 것. 그리고 전처럼 부처에서 딴지를 걸면 저 역시 곧바로 그만두겠어요."

규철은 흔쾌히 우미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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