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우미는 파주로 돌아가는 호정을 배웅하고 집으로 왔다. 따뜻한 커피가 입속을 감돌자, 하루의 긴장과 피곤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녀는 정체되어 있던 자기 삶에 변화가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떤 결과로 이어질진 알 수 없지만 지금으로선 기분 좋은 예감이었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부산으로 온 지도 일 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우미는 사람과 거의 대화하지 않았다. 오로지 책들과만 교감을 나눴다.
쓸 수 없다,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읽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늘의 만남으로 알게 되었다. 자신은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이 향할 대상이 없었다는 것을.
이 사실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애써 외면해 왔던 이 진실이, 그녀를 지독한 고독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하지만 괜찮다. 인생이라는 여정에 지쳐 곤히 잠들었던 것뿐이다. 이제 긴긴 잠에서 깨어나 외부를 응시하자 비로소 자기 말을 들려줄 대상이 보였다. 이것은 희망이다.
너무나 통속적인 문구지만 지금 우미는 자기를 향해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었다.
'괜찮다. 할 수 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자. 잘 견디고 살아남아 줘서 고맙다, 우미야.'
기차에 오르며 손을 흔들던 호정의 웃음이 생각났다. 연락 없이 오랜 기간 떨어져 지냈음에도 자신을 아끼는 애틋한 눈빛을 보내준 고마운 친구...
우미는 호정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면서도 그녀의 바람을 들어주지 못했다. 다정한 마음이 담긴 고맙다는 말 한마디. 호정을 배웅할 때 그 말을 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얼마나 좋아했을까.
우미는 메신저에 접속해 호정에게 문자를 보냈다. 비록 그녀처럼 이모티콘과 미사여구로 감정을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줄 수 있는 애정을 듬뿍 담아 진실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