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수강생들이 약간의 시간차를 보이며 속속 강의실로 들어왔다. 두 시가 되기 전에 여섯 명이 도착했다. 우미는 한 명, 한 명 올 때마다 차분하게 인사말을 건넸다. 학습화된 삶의 경험은 간과할 수 없는 걸까? 그녀의 본래 성격과는 무관한 사회적 미소가, 자연스럽게 피부 위로 투과되어 나왔다.
두 시가 되자 우미는 수강생 명단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한 분이 안 오셨네요. 5분만 더 기다렸다가 시작할게요."
우미의 말에 싹싹하게 대답하는 수강생도 있었고, 긴장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살피는 수강생도 있었다. 5분이 흘렀지만, 마지막 수강생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미는 명단을 한 번 더 흘끔거린 후 고개를 들었다.
"네, 반갑습니다. 이번 문학 창작 강의를 맡게 된 허우미라고 합니다."
우미의 인사에 몇몇 수강생이 따라서 '반갑습니다' 혹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손뼉을 치는 수강생도 있었다.
"간단히 제 소개부터 할게요. 저는 대전에서 살다가 부산 온 지는 일 년 정도 됐어요. 음, 대학생 때 단편 소설로 등단해서 십 년 정도는 정말 열심히 쓴 것 같네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최근 몇 년간은 글을 못 썼는데, 우연찮게 인연이 닿아 여러분과 만나게 됐습니다. 우리 수업이 총 12 회차니까 앞으로 석 달 정도 진행되겠네요. 그동안 서로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우미의 소개에 수강생들이 박수를 보냈다. 그때 강의실 문이 벌컥 열리며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우미는 그에게 수업 들으러 왔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고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자신이 늦었음에도 미안해하는 기색 하나 없이, 거만한 몸짓으로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가 등장하자 강의실의 공기가 냉랭해지는 것 같았다.
우미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목을 좌우로 흔들었다. 굳게 다문 입꼬리는 아래로 처져있었다. 잠시 후 그녀가 눈을 뜨자 안광이 번뜩였다. 우미는 남자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남자는 우미의 강렬한 눈빛에 당황하는 듯했으나, 금세 표정을 바꾸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흥미로운 생명체를 마주한 사냥꾼 같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이름은 와 묻는교."
그의 반항적인 말투에 수강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내면을 드러냈다. 놀란 눈으로 우미를 바라보거나, 영문을 몰라하며 눈빛을 교환하거나, 굳은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우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나직하게 말했다.
"수강생이면... 내보내려고."
남자는 뚫어지게 우미를 보다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미안합니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보네. 내 이름은 강구진이요."
우미는 그가 수강생임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았다.
"저 말고 다른 분들께 사과하셔야죠."
"아이고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구진은 사람들에게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장난스럽게 사과했다. 하지만 우미는 그를 보는 눈빛에 힘을 풀지 않았다. 그러자 꼿꼿했던 그의 상체도 조금 수그러들었다.
"함 봐주이소, 사과했잖아요."
억양은 투박했지만, 목소리는 확연히 부드러워져 있었다. 우미는 한숨 같은 콧김을 내쉬고는 엄격한 투로 말했다.
"좋습니다. 대신, 수업 동안에 다른 수강생분들께 민폐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구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몸이 ㄱ자가 되도록 상체를 바짝 구부렸다.
"민폐 끼쳐서 미안합니다. 민폐 안 끼치겠습니다."
그의 말투에선 아직 미숙함이 묻어났지만, 표정만큼은 진솔했다. 덕분에 강의실을 죄고 있던 긴장감도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우미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목소리에 상냥함을 첨가해 말을 이어갔다.
"드디어 모든 분이 다 오셨네요. 이제 돌아가면서 각자 자기소개를 해볼까요. 다들 필명은 준비해 오셨죠?"
여러 사람이 '네'라고 대답했다. 우미는 왼편에 앉은 수강생을 가리켰다.
"여기 작가님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자기소개를 해볼게요. 공지한 대로 우리 모두 서로를 작가님이라고 부를 거예요. 그러니 필명만 말씀하셔도 됩니다. 실명 공개 여부는 자유고요. 본인이 쓰고 싶은 이야기도 꼭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