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처음 지목된 여자 수강생은 일어서야 하나 망설이다가 괜찮다는 우미의 손짓에 바르게 고쳐 앉았다. 그녀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눈동자는, 마치 로봇과 인형을 섞어서 사람 모양으로 빚어 놓은 것만 같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필명만 밝힐게요. 제 필명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몸을 다소곳이 고정한 채 입술만 움직여 목소리를 냈다. 그녀는 말에 마침표를 찍음과 동시에, 고개를 약간만 숙였다가 들었다. 웃음기 없는 표정과 기계 같은 동작은, 신이 실수로 인간미를 빼먹고 창조한 피조물 같아 보였다.
그러나 뒤늦게 실수를 알아챈 신이, 감정 없음을 보완해 줄 요소들을 대거 추가한 것 같았다. 작고 갸름한 얼굴, 하얗고 맑은 피부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는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몸매가 잘 드러나지 않는 단정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늘씬한 체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책상에 앉아 있어도 키가 무척 커 보였다.
모두의 이목이 그녀에게 집중됐다. 특히 남자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경직된 표정과 말투에서, 낯선 이에 대한 강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구원이 더 말하지 않자 우미가 물었다.
"구원 작가님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으세요?"
"저는 마귀를 퇴치하는 사이비 목사와 거기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신도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녀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자기 앞의 공간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건조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파격적이었기에 모두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흠칫 놀라는 수강생도 있었다.
우미는 구원의 눈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눈 맞춤을 허락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소재네요. 어떤 이야기가 탄생할지 무척 기대됩니다. 혹시 그 소재로 이야기를 쓰고 싶은 특별한 동기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구원의 눈이 커졌다. 처음으로 그녀의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우미와 눈을 맞추었다.
"이런 이야기는 쓰면 안 되나요?"
"안 되긴요. 어떤 이야기든 가능합니다. 우리 수업에서 불가능한 소재는 없어요. 과도한 극단성만 두드러지지 않는다면 뭐든지 쓸 수 있지요. 제 역할이 여러분들 이야기의 균형을 잡아주는 거고요."
"네..."
구원은 원하는 대답을 들었는지 고개를 원래 위치로 가져다 놓았다. 우미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녀의 옆얼굴을 보다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구원 작가님, 혹시 그 질문을 한 이유가 있으세요?"
"어떤 질문이요?"
"그런 소재는 쓸 수 없냐고 물으셨잖아요."
"...... 안 된다고 할까 봐서요."
"저는 안 된다고 한 적이 없는걸요."
"네... 하지만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그녀는 다소 의기소침해 보였고, 약간의 불안감도 내비쳤다. 우미의 표정에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작가님, 이 방에 있는 우리는 모두 평등한 관계예요. 만약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센터장님과 의논해서 적절한 조치를 하겠지만, 창작물과 관련해서는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구원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제가 이상한 이야기를 써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실 거라고요?"
"그럼요."'
"제 글이 너무 많이 이상하면 혼내실 수도 있잖아요."
"전혀요. 이야기의 방향에 대한 논평은 할 수 있지만 절대 혼내지는 않습니다."
우미의 단언에도 그녀는 의심이 다 가시지 않은 듯했다. 구원은 다시 한번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관두었다. 대신, 어떠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은 그녀의 표정에 드러난 감정이 슬픔과 동류임을 알 수 있었다.
"좋아요. 이야기에 관한 내용은 앞으로 할 기회가 많으니까, 소개는 이쯤에서 마치죠. 수고 많으셨어요, 구원 작가님."
우미가 박수를 치자 수강생들도 따라 쳤다. 구원은 고개를 푹 숙여 인사했다. 처음 인사할 때와는 달리 경직된 몸도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우미는 구원 옆에 앉은 남자 수강생을 보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다음 작가님. 셀프 소개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