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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향기, 그림자

11.

by 김빗


우미가 강의하는 문학 창작 강좌는, 수요일 오후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 진행되었다.


평일 오전과 저녁은 이미 다른 강좌들로 지정되어 있었고, 주말은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강좌 위주였기에 선택지가 얼마 없었다. 우미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수강하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강좌는 두 시간 수업이었지만, 우미는 세 시간으로 하고 싶다고 규철에게 부탁했다. 단순 이론 강의를 넘어서서, 즉석에서 글도 쓰고 토론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강좌와 시간이 겹치지 않았기에 규철은 우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미는 수업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담한 강의실이었다. 수강 인원은 총 일곱 명으로 그녀 포함 여덟 명이 공간을 채우면 서로의 숨소리가 지척에서 들릴 것만 같았다.


우미는 공간에 깃든 감각을 느껴보려 했다.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진 벽에 손을 대보았다. 차가운 질감이 전해져 왔다. 그녀는 벽을 훑으며 천천히 걸었다. 곧 밝고 따스한 벽에 다다랐다. 반대편 창으로 비춰든 햇빛이 벽을 달구고 있었다.


온기가 스며든 공기는 냄새도 달랐다. 상쾌하면서도 달큼했다. 우미는 온몸으로 햇볕을 맞으며 창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빛의 장벽 너머로 주택가 골목이 어른거렸다. 그녀는 몸의 각도를 틀어 햇살을 피했다. 그러자 빛줄기 속을 떠다니는 먼지 사이로 아늑한 풍광이 드러났다.


택배 트럭이 엔진 소리를 내며 느린 속도로 지나갔다. 사람들은 차를 피해 길가로 붙었다. 어떤 이는 정면만 바라보며 빠르게 걸었고, 어떤 이는 느긋한 걸음으로 주변을 기웃댔다. 고개를 숙이고 폰을 보며 위태롭게 걷는 학생도 있었다. 청명한 가을의 오후 시간은 각자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듯했다.


한 몸이 되어 걷던 여성과 강아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찬바람이 불어왔다. 바닷가 근처라 그런지, 입속으로 파고든 바람이 혀 위에 짠내를 남겼다. 우미는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 커튼을 내렸다. 강의실 안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녀는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켜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학교 교실에 놓인 것처럼 일자로 정렬된 일인용 간이 책상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우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들이 마주 보게끔 원형으로 배치했다.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형태였다.


만족한 우미는 곧 낯선 사람들과 마주한다는 생각이 들자, 긴장과 설렘이 한마음으로 전해져 왔다. 그녀는 준비해 온 자료를 빈 책상 위에 하나씩 놓았다. 그리고 수강생들의 프로필을 찬찬히 살폈다.


이름과 나이, 성별만 표기되어 있었기에 어떤 사람들일지 무척 궁금했다. 상상으로 여백을 채울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마지막 상상의 축제를 마음껏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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